최근 중동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가 확대되면서 에너지 안보와 저탄소 에너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탄소중립을 공급망 안정성과 미래 경쟁력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다루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적 불확실성과 기후 회의론 확산 속에서 주요 기업들의 실질적 행동은 이어지고 있지만, 투자와 목표 설정에서는 신중론이 강화되는 양상으로 파악됐다.
영국의 표준·인증 전문기관인 BSI가 발표한 ‘넷제로 바로미터 2026’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7개국(G7) 기업 경영진 7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기업들의 78%는 정치적 환경과 무관하게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지속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 83%는 국가 목표 시점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탄소중립이 기업의 장기적 회복력 확보에 중요하다
이어 실제 행동도 강화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응답 기업의 69%는 최근 1년간 탄소중립 관련 조치를 확대했다고 답했으며, 축소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에 그쳤다. 향후 1년간 투자 확대를 예상한 기업도 38%로, 감소 전망(25%)을 웃돌았다.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지속하는 배경으로는 명확한 ‘사업적 동기’가 자리하고 있다. 응답자의 75%는 탄소중립이 기업의 장기적 회복력 확보에 중요하다고 평가했고, 74%는 전환을 하지 않을 경우의 위험이 더 크다고 인식했다. 특히 경쟁사보다 먼저 대응할 경우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응답도 73%에 달했다.
이처럼 기업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탄소중립은 더 이상 ‘환경적 책임’이 아니라 ‘경영 전략’으로 재정의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성(37%)이 가장 강력한 추진 요인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치적 불확실성과 정책 신뢰 부족은 여전히 주요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76%는 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답했고, 32%는 탄소중립 계획을 수정했으며 13%는 목표를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10년 내 탄소중립이 최우선 순위로 부상할 것"
이 같은 환경 변화는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응답자의 61%는 기후 회의론 확산에 대응해 탄소중립 메시지 전달 방식을 변경했다고 밝혔으며, 환경 보호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회복력', '리스크 관리', '미래 대비' 등 경영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기업들의 탄소중립 및 기후대응과 관련된 전반적인 의지는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79%는 향후 10년 내 탄소중립이 다시 정치적 우선순위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관련 전략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업들이 꼽은 탄소중립 추진의 주요 장애 요인은 비용(26%), 친환경 기술 투자 자금 부족(25%), 내부 역량 부족(23%) 순으로 나타나, 정책 불확실성보다 구조적 제약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됐다.
이번 조사 결과는 기업들이 기후 대응을 포기하기보다 ‘언어와 방식’을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탄소중립은 후퇴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경제 논리 속으로 재배치되고 있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