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은 ‘얼마나’보다 ‘언제’가 중요해졌다...수요 유연성의 효과 주목할 때
전력은 ‘얼마나’보다 ‘언제’가 중요해졌다...수요 유연성의 효과 주목할 때
한국 정책당국도 전력 수요 관리를 여전히 계도·절약 차원의 보조 정책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발전 설비와 동일한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력 수급 계획과 송·배전 투자, 요금 체계 개편, 디지털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수요 유연성을 우선 검토하지 않는다면, 설비 투자와 전기요금 상승, 재생에너지 출력 제한이라는 삼중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Energy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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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을 얼마나 생산하느냐 못지않게, 언제 사용하느냐가 시스템 안정성과 비용을 좌우하는 변수라는 진단이 나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력 전환 국면에서 ‘수요 유연성(demand flexibility)’이 전력 시스템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수요 유연성은 전력 시스템 상황에 맞춰 전력 사용의 시점이나 규모를 조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IEA는 전 세계 전력 수요가 2035년까지 매년 약 1,000TWh씩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전기차 보급 확대, 산업·건물 부문의 전기화,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확산 등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영국 전력 유연성 서비스의 성과. 2024년 영국 전력 시스템은 유연성(flexibility) 서비스 활용에서 사상 최고 수준의 성과를 기록했다. 한 해 동안 총 9GW의 유연성 자원이 계약되었고, 22GWh 규모의 유연성 서비스가 실제로 디스패치되었다. 이는 약 7,00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에 해당한다. 지난해만 소비자 비용 약 3억8천만 달러를 절감하는 효과를 냈다. 현재의 제도와 시장 구조가 유지될 경우, 향후 3년간 누적 절감 효과는 약 40억 달러(USD 4 billion)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 출처: IEA illustration based on Energy Networks Association data. 이미지 출처: 보고서에서 캡처.

송전망 투자 연기·정전 위험 감소…에너지 안보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수요 유연성을 활용할 경우 피크 부하를 완화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제한(curtailment)을 줄여 전력 시스템 효율을 최대 30%까지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신규 발전소나 송전망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고도, 기존 발전 설비와 전력망의 활용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효과는 뚜렷하다. 유연한 수요 관리는 피크 시간대 전력 부담을 줄여 정전 위험을 낮추고, 수조 원 규모의 송전망·발전 설비 투자 시점을 늦출 수 있다.

IEA는 이러한 접근이 신규 인프라 건설보다 더 빠르고 비용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수요 유연성은 기존 자산을 활용하기 때문에 사업 기간이 짧고, 시스템 위기 시에도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소비자 편익도 적지 않다. 보고서는 동적 요금제(time-varying tariffs)와 스마트 제어 기술를 활용할 경우, 가정용 전기요금을 5~15%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력 사용을 요금이 낮은 시간대로 이동시키는 것만으로도 가계 부담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가계 전기요금 5~15% 절감…시스템 비용도 낮춰

시스템 전체 비용 측면에서도 수요 유연성은 경쟁력이 높다. IEA는 유연성 자원이 제공하는 전력 용량의 비용이 신규 공급 설비를 건설하는 비용의 최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력 요금 안정화와 산업 경쟁력 유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후 대응 효과도 크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로 수요를 이동시키면, 화석연료 기반의 피크 발전 가동을 줄일 수 있다.

IEA는 이 경우 전력망 피크 시간대의 탄소 집약도가 최대 70%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전력 소비 패턴 조정만으로도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 유연성은 탈탄소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평가된다.

다만 보고서는 수요 유연성 확산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 요인도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소비자 행동 변화를 유도하기에 부족한 가격 신호, △공급 중심으로 설계된 구식 전력시장 규칙, △지역·계층 간 디지털 준비도 격차, △개인정보 보호·형평성·사이버 보안에 대한 신뢰 부족 등이 꼽혔다.

“유연성, 발전소처럼 다뤄야”…정책 내재화 주문

이로 인해 시범 사업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확산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IEA는 수요 유연성을 하나의 ‘시스템 자원’으로 공식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시장 설계, 소비자 정책에 이르기까지 유연성을 구조적으로 내재화하지 않으면, 전력 전환 비용과 위험이 불필요하게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수요 유연성은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발전소·송전망과 동등한 전략 자원”이라며 “효율·안보·비용·기후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핵심 열쇠”라고 밝혔다.

한국 정책당국도 전력 수요 관리를 여전히 계도·절약 차원의 보조 정책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발전 설비와 동일한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력 수급 계획과 송·배전 투자, 요금 체계 개편, 디지털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수요 유연성을 우선 검토하지 않는다면, 설비 투자와 전기요금 상승, 재생에너지 출력 제한이라는 삼중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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