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뭘 더 해야 하나”라는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개인의 분리수거나 절약보다 정부와 기업이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이끌어주길 기대한다. 2026년 기후위기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올 4월 발표한 보고서 『People and Climate Change 2026』는 31개국 2만3704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세계 시민들의 인식 변화를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계속 상승했지만, “개인이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응답은 2021년 대비 조사 대상 26개국 모두에서 하락했다. 한국 역시 감소 폭이 큰 국가군에 포함됐다.

“기후 행동 동의하지만, 누가 먼저 움직이나”
이는 단순한 무관심이라기보다 ‘집단적 피로감(Collective Exhaustion)’에 가깝다. Ipsos는 시민들이 기후 행동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부와 기업이 먼저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응답자의 59%는 “우리 정부가 기후 대응을 더 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자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서 세계적 리더라고 평가한 비율은 27%에 그쳤다.
특히 보고서는 오늘날 기후 담론이 ‘에너지 트릴레마(energy trilemma)’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에너지 가격, 에너지 안보, 탄소 감축이라는 세 목표가 동시에 충돌하는 상황이다.
중동 지정학 위기와 에너지 가격 상승 속에서 응답자의 74%는 에너지 비용 증가를 우려한다고 답했다. 절반은 “탄소배출이 늘어나더라도 에너지 가격 안정이 우선”이라고 응답했다. 동시에 55%는 “에너지 독립을 위해서라면 더 높은 비용도 감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이 더 이상 환경 이슈만이 아니라 생활비·안보·국가 경쟁력 문제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이상적 구호보다 "전기요금이 얼마나 줄어드는가", "에너지 안보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같은 현실적 효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소비자는 듣고 싶어 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도 큰 변화가 요구된다. 보고서는 현재 기업 ESG 메시지가 심각한 '신뢰의 격차'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
북미 소비자의 62%는 기업의 환경·사회적 영향을 알고 싶어 하지만, 75%는 기업의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소비자들은 기업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실제 행동의 진정성은 의심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최근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는 '전략적 침묵(strategic silence)' 현상도 나타난다. 정치·사회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ESG 메시지를 줄이거나 내부 커뮤니케이션 중심으로 전환하는 흐름이다. 입소스 평판위원회 조사에서도 "기업이 향후 ESG 커뮤니케이션에 더 신중해질 것"이라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침묵 자체가 해법은 아니라고 본다. 소비자들은 기업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경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메시지'가 아니라 '더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다. 화려한 캠페인보다 실질적 행동과 데이터 기반 성과가 우선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현실적 효용이다
특히 소비자 반응을 가장 크게 바꾸는 것은 거대한 환경 담론이 아니라 '즉각적 개인 효용'이었다. 보고서는 '탄소 배출 감소' 같은 추상적 설명보다 '건강에 더 안전한 성분', '전기료 절감',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 같은 메시지가 구매 동기를 훨씬 강하게 자극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인간 중심 효용(human benefit) 중심으로 문구를 재구성했을 때 구매 의향 상승 효과가 70% 안팎까지 나타났다.
프랑스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 정부는 저소득층 대상 전기차 리스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친환경 가치보다 '가계 교통비 절감'과 '에너지 독립'을 전면에 내세웠다. 월 100~150유로 수준의 저가 리스를 통해 전기차를 환경 상징이 아니라 생활경제 수단으로 재포지셔닝한 것이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 PR 전략의 핵심은 '환경 보호'라는 추상적 당위보다 '내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설명하는 데 있다. 기업은 더 이상 소비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대신 비용 절감, 건강, 안전, 에너지 자립, 생활 안정 같은 현실적 효용을 연결해야 한다.
기업은 브랜드를 넘어 ‘시스템 리더’로 나설 때
이와 관련 한국인들도 기후위기의 심각성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개인 실천 중심 접근에 피로를 느끼며 정부와 기업의 시스템적 대응과 실질적 성과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인식의 변화가 확인되었다(이미지 참조).
동시에 기업은 단순 브랜드 캠페인을 넘어 '시스템적 리더(system leader)'로 자신을 포지셔닝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개인의 작은 실천만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즉, 브랜드가 어떻게 공급망을 바꾸고, 인프라를 혁신하고, 에너지 체계를 전환하는지 보여줄 때 비로소 신뢰가 형성된다.
기후위기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도덕적 호소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남은 것은 생활의 언어와 신뢰의 문제다. "지구를 구하자"는 말보다 "당신의 삶을 더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만들겠다"는 설명이 더 강한 설득력을 갖는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