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미 발표한 산업정책과 기업들이 추진 중인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53%에서 58.6%까지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새로운 기술의 상용화나 대규모 추가 투자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철강·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의 생산 전망을 현실화하고, 정부와 기업이 이미 계획하거나 추진 중인 감축수단을 반영해 산출한 결과다.
기후단체 플랜1.5가 발표한 ‘산업·냉매 부문 2035년 감축목표 상향 제안’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 부문에서 3480만t, 냉매 부문에서 690만t 등 모두 4170만t의 온실가스를 정부 계획보다 추가 감축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냉매 추가 감축하면 2035 NDC 58.6%까지 상향
정부가 설정한 2035 NDC 하한인 53% 감축안에 따른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3억4890만t이다. 여기에 플랜1.5가 산출한 추가 감축량 4170만t을 반영하면 배출량은 3억720만t까지 내려간다. 2018년 국가 배출량 7억4230만t을 기준으로 하면 감축률은 58.6%가 된다.
보고서는 특히 산업·냉매 부문이 현재 NDC의 감축 수준을 낮추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2035년 정부안에서 산업·냉매 부문의 배출량은 2억3650만t으로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68%를 차지한다. 하지만 산업 부문의 2018년 대비 감축률은 24.3%에 그치고, 냉매 부문은 오히려 18.6% 증가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이는 전력 68.8%, 건물 53.6%, 수송 60.2% 등 다른 주요 부문의 감축률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플랜1.5는 산업과 냉매의 낮은 감축률이 2035 NDC 하한을 53%에 묶어두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분석의 출발점은 ‘기준배출량(BAU·Business As Usual)’이다. BAU는 별도의 추가적인 감축정책을 시행하지 않았을 경우 예상되는 미래 배출량으로, 여기에서 정책·기술을 통해 줄일 수 있는 감축량을 빼 목표배출량을 산정한다.
2035 철강 배출전망, 정부안보다 380만t 낮출 여지
문제는 산업 생산량이나 설비 가동률을 실제보다 높게 전망하면 BAU 역시 높아지고, 같은 양을 감축하더라도 최종 목표배출량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플랜1.5는 철강과 정유 등의 BAU에 최근 생산 감소 추세와 국제기관의 전망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분야가 철강이다. 정부의 53% 감축안은 철강업의 2035년 BAU를 9530만t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국내 조강 생산량은 2018년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의 조강 생산량이 2025~2030년 연평균 1.3%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이 전망을 적용한 뒤 2030년 이후에는 생산량이 더 이상 줄지 않는다고 보수적으로 가정하더라도 철강업의 2035년 BAU를 정부안보다 380만t 낮은 9150만t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봤다.
해외로 간 저탄소 제철 투자…국내선 계획 없어
여기에 정부 NDC에 빠져 있는 감축수단을 추가하면 감축 폭은 더 커진다. 대표적인 것이 ‘직접환원철-전기로(DRI-EAF)’다. 철광석을 천연가스나 수소로 환원해 만든 직접환원철을 전기로에서 녹여 철강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보고서는 기존 고로-전로 방식의 탄소집약도를 철강 1t당 2.05tCO₂, 천연가스 기반 DRI-EAF를 0.35tCO₂로 제시했다. 국내 철강·자동차 기업들이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추진하는 연산 270만t 규모의 DRI-EAF 제철소와 같은 규모를 국내에 적용할 경우 약 459만t을 추가 감축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특히 현대제철과 포스코 등이 해외에서는 DRI-EAF 사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구체적인 투자계획이 없다는 점에서, 보고서는 이를 기술의 부재보다 국내 정책적 유인의 문제로 해석했다.
보고서는 DRI-EAF가 2030년대 중반 이후 본격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수소환원제철보다 조기에 활용할 수 있는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정부가 발표한 ‘수소환원강’도 정작 NDC에서 빠져
정부 정책 간 불일치도 확인됐다. 정부는 2035 NDC 산업 부문 토론 과정에서 ‘수소 환원강 생산’을 철강업의 주요 감축수단으로 제시했지만 최종적인 철강업 감축수단에서는 이를 제외했다.
반면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에는 2035년까지 수소 환원강 생산 규모를 연간 250만t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 들어 있다. 이를 NDC에 반영하면 약 450만t을 추가 감축할 수 있다는 것이 플랜1.5의 분석이다.
철스크랩 사용 비중도 마찬가지다. 산업부는 2021년 발표한 ‘탄소중립 산업·에너지 R&D 전략’에서 철스크랩 사용 비중을 2030년까지 30%로 높이는 목표를 제시했고, 포스코 역시 관련 설비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 NDC에는 철스크랩 사용 비중이 25%로 반영됐다. 플랜1.5는 기존 정부·기업 계획에 맞춰 이를 30%로 높일 경우 추가 감축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혼합 시멘트 확대가 여는 시멘트 산업 감축 여력
이 같은 BAU 조정과 감축수단 확대를 적용하면 철강업의 2035년 목표배출량은 정부안보다 크게 낮아질 수 있다. 정부의 53% NDC안에서 철강업의 2018년 대비 감축률은 22.1%에 불과하다. 보고서는 생산 전망과 감축수단을 현실화할 경우 이보다 상당폭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다.
시멘트를 중심으로 한 비금속 산업에서도 추가 감축 여력이 확인됐다. 시멘트 생산에서 가장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 과정은 석회석을 고온으로 가열해 ‘클링커’를 만드는 공정이다. 따라서 클링커 일부를 다른 재료로 대체하는 혼합시멘트 비중을 높이면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정부는 2018년 18% 수준이었던 혼합시멘트 생산 비중을 2035년 4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플랜1.5는 이를 60%까지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4년 기준 혼합시멘트 비중이 독일 65%, 미국 58%, 인도 73%, 인도네시아 68%에 이르는 만큼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혼합시멘트 비중을 60%까지 높이면 정부안보다 약 154만t을 추가 감축할 수 있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폐합성수지 등 대체연료 사용 확대를 함께 적용하면 비금속 업종의 감축량은 정부안 680만t에서 1040만t으로 360만t 늘어난다.
정부도 꼽았던 NCC 전기화, 왜 최종안에서 빠졌나
이에 따라 비금속 업종의 2035년 배출량은 3200만t에서 2840만t으로 낮아지고, 2018년 대비 감축률은 26.4%에서 34.7%로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석유화학에서는 나프타분해시설(NCC)의 전기화가 핵심 감축수단으로 꼽혔다. NCC는 나프타를 800~9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해 에틸렌 등 석유화학 기초원료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LNG 등 화석연료를 태우기 때문에 대량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정부는 2023년 ‘탄소중립 기술혁신 전략로드맵’에서 전기가열로를 적용한 NCC 실증계획을 제시했고 2035 NDC 토론 과정에서도 ‘무탄소 NCC’를 주요 감축수단으로 제시했지만 최종 NDC에서는 제외했다.
플랜1.5는 전기 NCC 2기를 도입하면 약 136만t을 추가 감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출권거래제 강화 등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석유화학단지 집단에너지시설의 연료를 전환하는 방안까지 반영하면 석유화학 부문의 감축량은 정부안 700만t에서 1200만t으로 늘어난다.
줄어드는 석유 수요, 정유 BAU에는 제대로 반영됐나
이에 따라 2035년 석유화학 업종 배출량은 4720만t에서 4220만t으로 낮아지고, 2018년 대비 감축률은 14.5%에서 23.6%로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유업은 앞으로 감소할 석유 수요를 BAU에 반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기차 확산 등으로 석유 수요가 감소하면 정유공장의 가동률과 원유 처리량 역시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플랜1.5는 이런 생산량 전망을 반영해 정유업의 2035년 BAU를 2070만t에서 1910만t으로 160만t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에너지 효율 개선과 폐플라스틱·폐타이어 활용 등을 확대하면 감축량을 정부안 230만t에서 330만t으로 늘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정유업의 2035년 목표배출량은 1840만t에서 1580만t으로 줄고, 2018년 대비 감축률은 9.4%에서 22.2%로 높아진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조립 업종에서는 공정가스 관리가 핵심이다. 반도체 식각·세정 공정 등에 사용되는 일부 불소계 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훨씬 크다. 이를 스크러버 등 저감장치에서 분해하면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가스 저감률 97%까지
정부는 2035년 공정가스 저감률을 반도체 88%, 디스플레이 86%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플랜1.5는 주요 기업들의 현재 저감실적과 향후 계획을 감안하면 이를 97%까지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저감률을 97%로 높이면 약 430만t을 추가 감축할 수 있다. 공정에서 열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LNG를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보일러로 일부 대체하면 약 116만t을 추가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따라 전자조립 업종의 감축량은 정부안 2130만t에서 약 2680만t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냉매 부문은 산업과 함께 이번 분석에서 가장 주목되는 분야다. 에어컨과 냉장·냉동설비 등에 사용하는 일부 냉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매우 크다. 설비에서 냉매가 누출되거나 폐기 과정에서 제대로 회수되지 않으면 그대로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진다.
정부는 냉매 누출률을 2018년 8.5%에서 2035년 7.7%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플랜1.5는 냉매의 사용·회수 이력관리와 누출관리를 강화할 경우 이를 4%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냉매 누출률 7.7% 아닌 4%로 낮추면 690만t 더 감축
보고서는 유럽연합(EU)이 냉매 관리제도를 강화하면서 누출률을 2016년 12.6%에서 2020년 3% 수준까지 낮춘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국내 누출률을 4%까지 낮추면 정부안보다 약 690만t을 추가 감축할 수 있다. 플랜1.5가 분석한 산업별 감축량을 합하면 산업 부문에서 정부안보다 3480만t, 냉매 부문에서 690만t을 추가로 감축할 수 있다.
산업 부문의 2035년 목표배출량은 정부안 2억910만t에서 1억7430만t으로 줄고, 2018년 대비 감축률은 24.3%에서 36.9%로 높아진다. 산업과 냉매를 합친 목표배출량도 2억3650만t에서 1억9480만t으로 낮아진다.
결국 국가 전체로는 2035년 배출량을 정부 하한안의 3억4890만t에서 3억720만t으로 4170만t 낮출 수 있다. 이는 2018년 배출량 대비 58.6% 감축에 해당한다.
더구나 보고서는 여기에 수소 기반 감축수단을 추가로 반영하면 산업 부문에서 440만t을 더 감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산업 부문의 감축률은 38.5%까지 올라가고 국가 전체 2035 NDC는 59.2%까지 높아질 수 있다. 보고서가 제시한 기본 상향안 58.6%와 수소 기반 추가 상향안 59.2%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제 공은 국회로…‘53% 하한’ 그대로 둘 것인가
이번 분석은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과도 맞물린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기후소송 결정에서 2031년 이후의 감축목표를 법률에 충분히 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31~2049년 장기 감축경로를 법제화해야 한다.
정부는 이에 앞서 2035 NDC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 범위로 정해 유엔에 제출했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 등 실제 산업 규제와 연동되는 기준은 사실상 하한인 53%다.
플랜1.5는 이 53%가 산업·냉매 부문의 낮은 감축률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본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회가 2026년 진행한 기후위기 대응 공론화에서도 참여 시민의 74.9%가 한국의 감축목표가 1.5도 목표 달성을 위한 세계 평균 감축률 이상이어야 한다고 답했고, 77.9%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넘기지 않는 조기 감축경로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보고서는 산업 부문의 낮은 감축목표가 실제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늦출 가능성도 지적한다. 2024년 정부의 감축목표 이행점검에서 철강·석유화학·정유 업종의 탄소집약도나 에너지원단위가 2018년보다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기존 감축수단으로 58.6% 감축…2035 NDC 다시 짜야
결국 쟁점은 ‘산업계가 감당할 수 있느냐’만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이미 발표하고 추진하고 있는 감축수단을 NDC에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했느냐로 옮겨간다.
특히 플랜1.5의 계산대로라면 53%에서 58.6%로의 상향에 필요한 4170만t은 전혀 새로운 감축기술만을 전제로 한 수치가 아니다. 생산 전망을 현실화하고 DRI-EAF, 혼합시멘트 확대, 무탄소 NCC, 공정가스 저감, 냉매 누출관리 등 이미 상용화됐거나 정부·기업이 계획 또는 실증하고 있는 수단을 반영한 결과다. 플랜1.5는 보고서에서 파리협정이 각국에 요구하는 ‘가능한 최고의 의욕(highest possible ambition)’이라는 원칙에 비춰 산업·냉매 부문의 감축목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국가 감축목표의 의욕 수준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 산업·냉매 부문의 감축목표가 ‘가능한 최고의 의욕’을 반영하는지 재검토”해야 한다며 산업의 탈탄소·녹색전환을 실질적으로 이끌 수 있는 수준으로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회가 장기 감축경로를 법률에 새로 담는 과정에서 2035년 53%라는 하한선을 그대로 법제화할 것인지, 아니면 이미 확인된 산업·냉매 부문의 추가 감축 가능성을 반영해 조기 감축경로로 수정할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