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경영보고서 늘었지만…기후 리스크 ‘숫자 공시’는 머뭇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늘었지만…기후 리스크 ‘숫자 공시’는 머뭇
전문가들은 현재의 ESG 공시가 ‘준비 단계의 확산’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다. 보고서 발간 여부 자체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작동하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지만, 정작 투자자와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기후 리스크가 기업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정량적 설명이다.
Company&Action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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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자율공시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등 질적 측면에서는 한계도 드러났다. 기후 위험이 기업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제시하는 단계에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202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보고서를 자율 공시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225개사로 전년 대비 약 10% 늘었다. 자산 규모가 크고 시가총액이 높은 기업일수록 공시 비율이 높아,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사실상 대기업 중심의 공시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공시의 ‘내용’이다. 공시 기업의 95%가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기회 요인을 식별했다고 밝혔지만, 이를 재무적 영향으로 환산해 수치로 제시한 기업은 17%에 불과했다.

기후 관련 전략·위험관리 공시 현황(단위 : 사). 이미지 출처: 보도자료에서 캡처
한국거래소

왜 기후 위험을 숫자로 말하지 못하나?

시나리오 분석을 수행한 기업도 38% 수준에 머물렀다. 거래소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지만, 증가세가 멈췄다는 점에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배경에는 첫째, 측정 가능한 기준의 부재가 꼽힌다. 기후 위험은 정책·기술·시장·평판 등 복합 요인이 얽혀 있으며, 단기 손익계산서에 즉각 반영되기보다 중장기 재무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 기업 다수는 이러한 위험을 자본적 지출, 자산 손상, 매출 변동과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내부 기준을 아직 갖추지 못한 상태다.

또 기업 내부의 책임 리스크 회피 심리도 작용한다. 정량 수치는 검증과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잘못된 추정이나 과도한 낙관·비관 전망은 향후 투자자 분쟁이나 규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ESG 공시의 병목, 허술한 데이터 관리

이 때문에 기업들은 ‘질적 설명’에 머물며 법적·평판적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유인을 갖는다. 실제로 재무적 영향을 수치로 제시한 기업 가운데 산정 근거까지 함께 공개한 곳은 9%에 불과했다.

특히 문제는 연결기준 데이터의 취약성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공시 기업의 99%가 스코프(Scope) 1·2 배출량을 공개했지만, 종속기업을 포함한 연결기준으로 공시한 기업은 1%에 그쳤다.

이는 단순한 계산상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기업집단 전반에 걸친 데이터 관리 체계가 아직 ESG 공시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스코프 3 배출량의 경우 68%의 기업이 공시했지만, 구체적인 산정 방법이나 추정값의 사용 범위를 명확히 밝힌 기업은 소수에 불과했다. 공급망과 사용·폐기 단계까지 포괄하는 스코프 3는 기업 외부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공시의 신뢰성과 비교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제약을 안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 모범사례로 제시한 D사. 온실가스 배출량 및 감축 목표를 충실히 기재하고 내부 탄소 가격을 제시했다. 이미지 출처: 모범사례 자료에서 캡처
한국거래소

‘무엇을 했나’에서 ‘얼마나 영향을 받나’로

전문가들은 현재의 ESG 공시가 ‘준비 단계의 확산’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다. 보고서 발간 여부 자체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작동하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지만, 정작 투자자와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기후 리스크가 기업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정량적 설명이다.

공시의 초점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서 ‘얼마나 영향을 받는가’로 이동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형식적 문서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한국거래소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기후 위험·기회, 재무적 영향, 시나리오 분석, 온실가스 배출량 등 4개 부문에 대한 모범 작성 사례를 ESG 포털을 통해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세미나와 기업 간담회를 통해 공시 역량을 높이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향후 국내 ESG 공시 제도 설계에 반영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다만 시장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율공시 단계에서조차 양적 공시가 정체돼 있다면, 향후 의무공시 전환 국면에서 기업들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 ESG 공시가 ‘보고서 경쟁’에서 ‘데이터 경쟁’으로 넘어가는 순간, 지금의 미흡한 숫자 공시는 기업 신뢰도의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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