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가 수천 개 미국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후 공시 의무화 제도의 첫 이행 규정을 확정했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후 관련 재무위험을 체계적으로 공개하도록 한 이른바 ‘캘리포니아형 기후 공시체계’가 본격 가동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CARB는 2월말 회의에서 ‘캘리포니아 온실가스 보고 및 기후 재정 위험 공개 초기 규정’을 채택하고, 기업의 첫해 보고 기한을 2026년 8월 10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규정은 2023년 제정된 SB 253(기후 기업 데이터 책임법)과 SB 261(기후 관련 재무위험법)의 시행을 위한 세부 운영기준을 담고 있다. 두 법안은 2023년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서명으로 통과됐으며, 2024년 관련 개정(SB 219)을 거쳤다.

연매출 10억달러 이상, 배출량 전면 공시
SB 253은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해당 기업은 2026년부터 매년 Scope 1(직접 배출)과 Scope 2(구매 전력·열 등 간접 배출)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 공급망·출장·통근·조달·폐기물·용수 사용 등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Scope 3 배출량은 2027년부터 의무화된다.
다만 CARB는 시행 첫해에는 Scope 1·2만 보고 대상으로 한정해 기업 부담을 완화했다. 수익 기준은 캘리포니아 주 세무당국에 보고된 총수입과 연동되며, 프로그램 운영비 충당을 위한 정액 수수료 체계도 도입된다.
SB 261은 적용 범위를 연 매출 5억 달러 이상 기업으로 넓혔다. 이들 기업은 기후 변화가 자사 재무 상태에 미치는 위험과 이를 완화·적응하기 위한 조치를 2년마다 보고해야 한다. 사실상 미국 대기업 상당수가 기후 공시 의무에 포함되는 셈이다. CARB는 잠정적으로 4000개 이상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제도는 현재 법적 쟁송에 직면해 있다. 미 연방 제9순회항소법원은 지난해 말 SB 261의 집행을 일시 중단하라는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SB 261에 따른 기후 재무위험 보고는 현재 자발적 제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법적 공방 속 “글로벌 기후 공시 흐름에 합류”
CARB에 따르면 자발적 공개 시스템을 통해 이미 120건 이상의 기후 재무위험 보고서가 제출·공개됐다. 제조·기술·의료·에너지·운송·금융·소비재 등 다양한 산업 분야 기업이 참여했다. CARB는 첫해 성실 제출 기업에 대해 재량적 집행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면제 대상에는 세금 면제 비영리단체와 자선단체, 정부 및 정부 과반 지분 보유 기관, 보험 규제 대상 특정 보험사 등이 포함된다.
로렌 산체스 CARB 위원장은 “명확하고 일관된 정보 공개 요건을 통해 투자자와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며 “기후 데이터 투명성을 요구하는 글로벌 흐름에 캘리포니아도 본격 합류했다”고 밝혔다.
CARB는 대기오염 저감을 통한 공중보건·생태계 보호를 임무로 하는 기관으로, 캘리포니아의 기후변화 정책을 총괄한다. 이번 규정은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기후 리스크를 자본시장 정보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는 제도적 전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자동차 등 한국 기업 ‘직접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번 조치는 미국 내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하거나 매출을 올리는 한국 기업 중 연 매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동일하게 공시 의무를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반도체·배터리·자동차·IT·에너지·화학 등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편입된 기업은 Scope 3 산정 체계 구축이 불가피하다.
또한 미국 기업이 공급망 배출량을 산정·공개해야 하는 만큼, 한국 협력사에도 정밀한 배출 데이터 제출 요구가 확대될 전망이다.
단순 환경 규제를 넘어 회계·재무·공시 체계 전반의 고도화를 요구하는 구조적 변화로, 국내 기업의 ESG 데이터 관리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