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 룰 바뀐다…기후·개발 전환기에 선 한국 정부·기업
국제금융 룰 바뀐다…기후·개발 전환기에 선 한국 정부·기업
기후위기 대응과 개발 재원을 둘러싼 국제금융 질서가 재편 국면에 들어섰고, 다자개발은행(MDB) 확대, 국가 플랫폼 중심 투자, 기후 리스크의 제도적 내재화 등이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산업계도 구조적 대응이 절실하다.
Financials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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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0년이 기후위기 대응과 개발이 함께 갈지, 아니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신흥·개도국)’를 더 깊은 격차로 갈라놓을지 가를 분기점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기후·개발·국제금융체제(International Financial Architecture) 개혁을 다루는 국제 전문가 그룹(Task Force)은 지난 10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투자가 가장 필요한 곳에서 희소성이 반복 생산되는 구조”를 지목하며, 다자개발은행(MDB)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 안전망의 역할 재설계를 촉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신흥·개발도상국은 청정에너지 전환, 적응,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에 2030년까지 연 2조3000억~2조5000억 달러, 2035년에는 연 3조1000억~3조5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

기후 위기가 경제·금융 시스템으로 어떻게 전이되는지 보여주는 개념도(Climate Risks and Transmission Channels). 기후위험의 세 가지 기후 위기 유형은 물리적 위기, 전환 위기, 전이(스필오버) 전환 위기(Spillover Transition Risk) 등이 있다. 이는 자본 스톡(주택·인프라·설비) 등이 파괴되고, 생산 차질, 농업·에너지 공급 감소 등 공급망 충격과 산업 전환 과정에서의 비용 상승, 탄소집약 자산의 가치 하락, 수출감소(대외충격) 등의 직접 영향으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 실물·금융·재정 분야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간접 영향으로 이어진다. 특히 전이 전환 위험은 국경을 넘어 확산되므로, IMF·다자개발은행(MDBs)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이미지 출처: 보고서에서 캡처.

민간자금 못 끌어오는 MDB…기후금융 병목 원인은

그러나 2023년 국제 기후금융은 약 1960억 달러에 그쳤고, 같은 해 전 세계 기후금융 중 이들 국가가 받은 비중은 17%, 최빈개도국(LDC)은 3%로 집계됐다.

이같은 병목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는 MDB의 ‘규모와 조건’이 거론된다. 보고서는 MDB가 민간자금을 끌어오는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MDB 대출 1달러당 민간자금 동원은 평균 1.2달러에 불과하며, 세계은행만 놓고 보면 0.6달러 수준으로 더 낮다.

그 결과 기후위기 대응의 또 다른 축인 적응 분야도 만성적 자금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개발도상국의 적응 재원 격차는 국제기구 추정치로 연 1870억~3590억 달러에 이른다.

보고서는 “MDB를 기후·개발의 ‘중심 인프라’로 다뤄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무조건 대출 규모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 더 싼 금리와 더 긴 만기 등 ‘조건’ 자체를 바꾸고, 국가별로 성장·일자리·회복력·정의로운 전환을 한 전략에 묶는 ‘컨트리 플랫폼(country platforms)’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합의 진전되는데, 한국도 ‘구조적 대응’ 절실

현재 국제적 합의 차원에서도 압박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2025년 ‘세비야 약속(Sevilla Commitment)’은 MDB 대출을 3배로 늘릴 것을 촉구했고, ‘바쿠-벨렘 로드맵’은 2035년까지 1조3000억 달러 기후재원 동원 목표 아래 MDB의 역할을 명시했다.

보고서는 기후 안정과 개발은 경쟁 과제가 아니라 동일한 과제인 만큼 "국제금융 규칙을 바꾸지 않으면, 고금리·고부채·위험 프리미엄이 겹친 글로벌 사우스에서 ‘개발을 위한 투자’가 먼저 꺾이고, 그 공백이 기후 리스크를 키우며 다시 금융불안으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굳어진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대응과 개발 재원을 둘러싼 국제금융 질서가 재편 국면에 들어섰고, 다자개발은행(MDB) 확대, 국가 플랫폼 중심 투자, 기후 리스크의 제도적 내재화 등이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산업계도 구조적 대응이 절실하다.

한국은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견 공여국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기후재원 집행은 개별 사업 중심에 머물러 있다. 기후재원을 개발협력·산업전략과 분리된 보조금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전환 패키지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첫 손실 누가 감당하나…한국형 컨트리 플랫폼 필요

즉, ▲재생에너지 ▲전력망 ▲도시 적응 ▲산업 전환 ▲일자리·기술 이전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는 통합 설계 능력이 요청된다.

특히 한국 정부는 MDB 이사회에서 자본 확충 및 위험 인수 확대, 장기·저리 대출 확대, 기후 리스크를 반영한 채무 재조정 장치 등을 일관되게 요구하는 외교적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적개발원조(ODA) 확대 논리를 넘어,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기반을 넓히는 산업 외교이기도 하다.

국내 금융기관도 ‘ESG 금융’에서 ‘전환 금융(Transition Finance)’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ESG 금융이 평가·공시 중심이었다면, 향후 10년은 위험을 감수하고 자본을 움직이는 전환 금융의 시기다.

보고서가 지적하듯 MDB의 민간자금 동원력이 낮은 이유는, 위험이 높은 개도국 시장에서 첫 손실(first loss)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은 MDB, 수출신용기관(ECA)과 함께 혼합금융(blended finance), 보증·후순위 출자, 기후회복채권(climate resilient debt clauses) 등을 적극 실험할 필요가 있다.

혼합금융의 핵심 요소. 상업 금융과 개발 금융은 공공 부문 및 민간 부문에서 제공될 수 있다. 출처: OECD (2018) , 지속가능발전목표(SDG)를 위한 혼합금융의 활용.

플랜트 수출 시대 끝난다...전환 설계자 역할해야

착한 금융으로서의 태도 전환 차원이 아니라 향후 글로벌 공급망이 탄소·기후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하는 체제로 전환될 경우, 지금의 보수적 태도는 오히려 중장기 금융 리스크로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기업도 ‘전환 파트너’로 포지셔닝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글로벌 사우스의 기후 투자는 단순한 플랜트·설비 수출 시장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환의 현장이다.

한국 기업은 재생에너지, 수소, 스마트그리드, 전기차, 배터리, 기후 적응 인프라 등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단기 수익 중심의 EPC(설계·조달·시공) 모델에 머물 경우 MDB·국제금융의 새로운 규칙과 어긋날 수 있다.

현지 산업 생태계와 결합한 투자, 고용·기술 이전을 포함한 사업 구조, 장기 운영(O&M)과 금융을 결합한 모델 등을 체계화해야 한다. 이는 ‘값싼 공급자’가 아니라 전환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로서의 위치를 의미한다. 기후 안정과 개발은 같은 프로젝트라는 집중과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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