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규제 완화 이후...기업 '데이터'가 진짜 발목잡는다
EU 규제 완화 이후...기업 '데이터'가 진짜 발목잡는다
EU의 전환 계획 의무 완화는 단기적인 규제 비용은 줄일 수 있지만, 기업이 직면한 근본적인 재무·법적 위험을 줄여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법적 책임의 크기와 절차적 복잡성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전환 전략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측정 가능한 자산·배출·투자 흔적 등 외부에서 수집된 데이터에 의해 더 엄정하게 평가받는 조건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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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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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연합(EU)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의무 및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 관련 규제를 완화·축소하고, 특히 기후 전환 계획(Climate Transition Plan) 의무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초 CSRD는 많은 기업에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개정안에서는 1,000명 이상 직원과 연간 순매출액이 4억 5천만 유로를 초과하는 기업으로 범위가 좁혀졌다. 이에 따라 전체 기업의 약 90%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 내용 및 기준도 간소화 됐다. 복잡한 섹터별 ESRS 기준 적용이 선택적이고, 비의무적인 것으로 바뀌고 보고 요구사항이 단순화된 것이다. 특히 기업들이 중소협력회사에게 과도한 정보 요구를 강제하지 않도록 의무가 제한됐다.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CSDDD) 지침에 포함됐던 기업의 기후 전환 계획(Climate Transition Plan) 수립 및 공시 의무 조항도 빠졌다.

현대자동차 지속가능성보고서(2025) 환경 섹터 목표대비 성과분석 페이지에서 캡처.

실사 범위 축소로 조금 느긋해도 된다?

또 기업 실사는 5,000명 이상 직원과 연간 순매출액이 15억 유로를 넘는 대기업으로 좁혀졌다. 적용 범위가 대폭 축소된 것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기업이 가치사슬 전체에 걸친 심층 실사를 수행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다. 개정된 실사 의무도 2029년 이후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EU의 이러한 결정은 EU 집행위원회 및 회원국들이 지속가능성 규제가 기업 경쟁력에 부담을 준다는 입장을 고려했다. 이러한 기조로 중견·중소기업의 규제 유입이 크게 줄고,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대한 요구도 상당 부분 경감됐다는 평가다.

이때문에 EU의 ‘녹색 규제 선도’ 전략이 흐려졌다거나 투자자 및 이해관계자에게 장기적인 기후 위험·전략 투명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지속가능성·기후 정책과 기업 경쟁력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정치경제적 균형을 기하는 흐름일 순 있지만 전반적으로 지속가능성 보고 규제의 후퇴로 읽혀서다.

이와 관련 규제 강도로만 해석하면 큰 흐름을 놓친다는 지적도 있다. 즉, 오늘날 기업의 기후 성과는 더 이상 단일한 공시 기준이나 보고서에만 의존해 평가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수집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 외부에서 생성·축적되는 데이터만으로도 기업의 실제 전환 행태를 상당 부분 재구성할 수 있다.

기후 성과 파악은 보고서로 않는다

예를 들면 위성 기반 관측과 원격 감지 기술의 발전으로 기업 외부에서 배출량을 직접 측정하는 것이 점점 더 가능해지고 있다. 기업이 보고하지 않더라도, 공장·발전소·산업 시설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배출 흔적은 관찰 가능한 데이터로 남는 것이다.

또 데이터 연결 기술의 고도화로 복잡한 기업 구조도 검증이 가능해졌다. 개별 자산과 법인, 소유 구조를 국가와 지역을 넘어 대규모로 재구성할 수 있고, 다국적 기업의 실질적 자산 기반과 책임 범위를 외부에서 파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마찬가지로 전환 투자, 설비 확장, 자산 매각이나 폐쇄 결정은 모두 관찰 가능한 데이터로 기록돼, 대규모 기업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체계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

기후 변화 대응 관련 정보 기업인 '포워드 애널리틱스' 모리츠 베어 CEO는 ESGToday에 기고한 글에서 "데이터 환경의 고도화는 규제가 완화되는 상황에서도 기업의 책임성은 오히려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규제 여건이 만들어지느냐는 둘째 문제고 기업의 기후 대응 성과를 실증적으로 파악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투명한 숫자의 심판에 대비할 때다

이는 은행, 보험사, 자산 운용사 등 금융 시장으로 전이된다. 미사여구로 점철된 보고서보다는 자산과 비용 구조가 실제적으로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보면 기업의 기후 전환 위험을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EU의 전환 계획 의무 완화는 단기적인 규제 비용은 줄일 수 있지만, 기업이 직면한 근본적인 재무·법적 위험을 줄여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법적 책임의 크기와 절차적 복잡성을 낳는다. 예를 들어 셸(Shell) 판결에서 보듯 법원과 감독기관, 각국 법 체계로 집행 권한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전환 전략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측정 가능한 자산·배출·투자 흔적 등 외부에서 수집된 데이터에 의해 더 엄정하게 평가받는 조건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대응 방향 역시 ‘데이터로 검증 가능한 전환 역량’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공식적인 전환 계획 제출 의무가 약화되더라도, 실제 투자와 사업 구조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기업은 국제 금융시장과 글로벌 공급망에서 신뢰를 잃을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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