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에너지 시스템을 둘러싼 질문도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어떤 에너지로 구동할 것인지, 기후 충격에 견디는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도시 전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불확실성 속에서 탄소 제거 기술을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지 등 다양한 의제가 기술 연구와 맞물려 제기된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받는 논의는 ‘복잡한 도시 형태를 반영한 기후 회복형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있다.
기존의 에너지 정책과 기술 논의는 발전 설비와 연료, 효율 개선 등 개별 기술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도시 에너지 시스템의 성능과 안정성이 도시 자체의 물리적 구조와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건물의 밀도와 배치, 높이, 도로망과 같은 도시 형태가 에너지 수요와 전력망 안정성, 재생에너지 활용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작동한다는 분석이다.

도시 구조가 에너지 수요와 비용 좌우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도시의 구조적 변화와 맞물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도시는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약 66%, 온실가스 배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에 2050년까지 도시 인구 비중이 6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에너지 수요는 단순한 증가를 넘어 구조적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
특히 전기차 보급 확대, 건물 전기화, 히트펌프 도입 등 ‘전기화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전력 수요의 패턴도 급변하고 있다. 과거 여름철 냉방 수요 중심이던 전력 피크는 점차 겨울철 난방 수요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인다. 전력망은 계절별·시간대별 변동성이 커진 수요 구조에 대응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도시 형태가 미치는 정량적 영향도 확인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건물 밀도와 배치 구조만으로도 에너지 사용 강도가 10% 이상 달라질 수 있으며, 태양광 등 분산형 에너지를 포함할 경우 그 차이는 30% 이상으로 확대된다.
나아가 도시 설계 단계에서 이러한 요소를 반영할 경우 에너지 인프라 구축과 운영 비용을 최대 30%까지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비용 구조가 발전 설비나 연료 가격 이전에 도시의 물리적 설계 단계에서 상당 부분 결정된다는 의미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드러난 도시의 연쇄 붕괴 리스크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변수들이 현재 정책과 계획에서 충분히 통합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시 인프라는 에너지·교통·건물 시스템이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된 복합 구조임에도, 실제 정책은 부문별로 분절된 채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특정 시스템의 장애가 전체로 확산되는 ‘연쇄 붕괴’ 위험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정전 사례가 반복돼 왔으며, 최근에는 폭염과 한파 등 극한 기후와 결합되면서 리스크가 더욱 증폭되는 추세다.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는 또 다른 구조적 긴장을 만든다. 태양광과 풍력은 기후 조건에 따라 출력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간 불일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충전과 냉난방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전력망은 더 높은 수준의 유연성과 저장 능력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현재 도시 에너지 시스템은 이러한 변동성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데이터와 모델링의 부족이다. 도시 형태와 기후, 에너지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고해상도 데이터가 부족하고, 각 영역이 서로 다른 모델로 운영되면서 상호 영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분절된 정책에서 통합 설계로…도시 에너지 전환의 방향
이 결과 정책 결정은 단순화된 가정이나 평균값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며, 실제 도시 환경의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기술적 측면에서는 변화의 가능성도 감지된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한 실시간 데이터 수집,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반 수요 예측, 고성능 컴퓨팅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기술이 결합되면서 도시 단위 에너지 시스템을 정교하게 분석·설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이는 도시를 단순한 에너지 소비 공간이 아니라 생산·저장·소비가 통합된 ‘에너지 플랫폼’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핵심은 도시계획과 에너지 시스템 설계를 분리된 영역이 아닌 하나의 통합 문제로 접근하는 데 있다.
건물 배치와 밀도, 녹지와 도로 구조, 미시기후 조건까지를 포함한 도시 형태를 에너지 관점에서 재설계하고, 재생에너지와 저장, 수요 관리까지 동시에 고려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도시 설계 단계에서 에너지 변수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건설·에너지·데이터 산업 간 경계도 점차 흐려질 수 있다. 또 향후 도시 경쟁력은 발전 설비 규모나 에너지 가격이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이고 유연한 에너지 구조를 도시 자체에 내재화했는지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시 관련 정책과 산업 구조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