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2024년 대비 85.8%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를 뒷받침할 녹색건축 전환과 민간 참여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건물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네 번째로 큰 부문으로, 전체의 6.3%를 차지하는 ‘다배출원’이기 때문이다.
KDB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는 11월 초 발간한 ‘국내 건축물의 탄소중립 현황 및 시사점’ 브리프에서 “에너지 효율이 높고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높은 이른바 ‘녹색건축물’로의 빠른 전환 없이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통해 산업·발전·수송·건물 등 부문별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4년 4,360만tCO₂eq에서 2050년 620만tCO₂eq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같은 기간 산업(–82.1%), 발전(–90.5%), 수송(–90.6%)과 비슷한 수준의 대폭 감축이 요구된다.

ZEB 인증·그린리모델링이 핵심 정책…민간은 아직 ‘걸음마’
녹색건축을 뒷받침하는 기술로는 △채광·환기·고성능 단열재 등으로 에너지 수요 자체를 줄이는 ‘패시브 기술’ △조명·냉난방 설비 효율을 높이는 ‘액티브 기술’ △태양광·지열 등으로 건물에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등이 있다. 이들 기술을 복합적으로 적용한 건축물이 탄소중립 시대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핵심 수단은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제도’와 ‘그린리모델링 사업’이다. ZEB는 건물의 에너지 부하를 최대한 줄인 뒤 신재생에너지로 남은 수요를 채워, 사실상 에너지 자립을 지향하는 건축물이다.
정부는 2017년부터 ZEB 인증제도를 운영하며 에너지 자립률과 1차 에너지 소요량을 기준으로 Plus(최고)부터 5등급까지 6단계로 나눠 평가한다. 인증을 받으면 용적률 완화(11~15%), 세제 감면(15~20%)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공공 부문은 2020년부터 연면적 1,000㎡ 이상 신규 건축물에 ZEB 4등급 이상 취득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민간 부문은 자율 참여에 의존하고 있어 인증 건수가 빠르게 늘지 못하는 상황이다. ZEB 4등급은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40~60%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해 초기 투자 부담이 적지 않다.
국내 건축물 97%가 민간 소유...이 가운데 78%가 노후 건축물
기존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그린리모델링’도 또 다른 축이다. 2013년 시작된 이 사업은 준공 후 10년 이상 된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단열 보강, 창호 교체, 고효율 설비 도입 등 에너지 성능 개선 공사비를 지원한다.
민간에 대해서는 그동안 에너지 절감 공사비 대출의 이자를 지원했으나, 고금리로 인한 실효성 한계로 2023년 말 신규 지원이 종료됐다.
정부는 2025년부터 공공 건축물의 그린리모델링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한편, 민간을 대상으로 한 이자 지원 재개와 새로운 유인책을 2026년부터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보고서는 "국내 건축물의 97%가 민간 소유이고, 이 가운데 78%가 노후 건축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민간 그린리모델링 활성화 없이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특히 국립환경과학원 탄소제로건물, 큰나무미래어린이집 등의 사례에서 보듯 “3중 유리, 고성능 창호, 외부 블라인드 같은 패시브 요소와 고효율 LED, 냉난방기 등 액티브 설비, 옥상·창호 태양광 시스템이 결합된 모델이 향후 공공·민간 건축물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미국·EU·영국, 건물 규제 앞서가…태양광 의무화·임대 제한까지
해외 주요국도 건물 부문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건물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90% 줄이는 목표를 내걸었다. 주(州)별로 규제가 엇갈리지만, 캘리포니아는 2020년 이후 신축 주택에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했고, 뉴욕은 2029년부터 신축 건물에 화석연료 설비 설치를 금지한다.
또 글로벌 녹색건축 인증제도인 ‘LEED’를 통해 인증 건물에 세액 공제 등을 제공하고,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시 ‘에너지 효율 모기지’로 금리 우대를 해준다.
EU는 2050년 탄소중립과 ‘모든 건물의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목표로, 태양광 설치 의무화와 함께 건물 에너지 성능을 A~G 7등급으로 나누는 EPC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최하위 G등급 건물의 임대를 금지했고, 영국도 EPC E등급 이상 건물만 임대를 허용하면서 에너지 효율 개선 자금을 지원한다.
보고서는 “해외는 규제와 인센티브를 병행해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을 사실상 ‘시장 진입 조건’으로 만들고 있다”며 “우리도 공공부문부터 강력한 기준을 적용하고, 민간에는 장기 저리자금 등 실질적인 유인책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녹색건축 시장 급성장…건설사, ‘탄소 저감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해야”
이같은 흐름에서 ZEB와 그린리모델링 관련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ZEB 시장 규모를 2030년 107조원, 2050년 180조원, 그린리모델링은 2023년 63조원에서 2050년 103조원까지 커질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다만 상당한 초기 투자비 때문에 사업 주체의 부담이 커, 공사비 보조금과 세제·금융 지원 등 정부 예산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예산과 정책 방향에 따라 참여 여부가 좌우되는 공공부문과 달리, 민간은 강제 수단이 제한적이다. 장기 상환이 가능한 녹색금융, 세제·규제 인센티브 등 민간을 끌어들일 촘촘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대목이다.
국내 건설사의 역할 전환도 필수적이다. 보고서는 “향후 건설사는 단순 시공업체가 아니라, 탄소 저감형 엔지니어링 공법과 에너지 관리 기술을 포함한 ‘녹색건축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신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며 “탄소중립 규제가 강화될수록 이러한 역량이 곧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