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온 플라스틱 펠릿(plastic pellets)에 대한 관리 규제를 본격 시행한다.
EU 역내 플라스틱 펠릿 손실은 미세 플라스틱 가운데 배출 가운데 세번째로 큰 원인에 해당한다. 재활용을 포함한 생산, 마스터 배치, 컴파운딩, 전환, 가공, 유통, 해상 운송을 포함한 운송 및 기타 물류 운영, 보관, 포장, 플라스틱 펠릿 용기 및 탱크 세척 등 플라스틱 펠릿 공급망의 모든 단계에서 부적절한 취급 관행으로 인해 발생한다.
또한 플라스틱 펠릿은 화학 첨가제를 함유할 수 있으며, 플라스틱 너들, 과립, 플레이크, 수지, 원통형 입자, 비드, 분말, 미세 분말, 미세 구형 입자 및 응집체와 같이 다양한 모양과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크기는 일반적으로 직경 2~5mm이지만, 이보다 작거나 큰 플라스틱 펠릿도 일부 있다.
EU가 플라스틱 펠릿을 별도의 규제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이미 미세플라스틱이 된 이후를 관리하는 것보다 미세플라스틱이 되기 전 단계를 차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즉, 펠릿은 아직 ‘쓰레기’가 아니라 산업 원료지만, 유출되는 순간 곧바로 환경오염 물질이 된다.
EU 집행위원회는 '플라스틱 펠릿 유출 방지 규정(Regulation EU 2025/2365)'이 지난 16일자로 발효됐다고 밝혔다. 이번 규정은 플라스틱 펠릿의 유출을 사전에 차단해 미세플라스틱 배출을 원천적으로 줄이고, EU 단일시장 내 공정 경쟁을 보장하는 동시에 청정 관행에 대한 투자와 혁신을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규정 적용 대상은 전년도 기준 연간 5톤 이상 플라스틱 펠릿을 EU 역내에서 취급한 경제 운영자와 EU 역내에서 플라스틱 펠릿을 운송하는 모든 항공·해상·육상 운송업체다. 여기에는 제조업체, 재활용업체, 가공업체, 재고 보유업체 등 펠릿을 취급하는 전반적인 산업 주체가 포함된다.

연 1,500톤 기준으로 의무 차등…대기업은 2027년까지 인증
해당 기업들은 플라스틱 펠릿의 유출 또는 손실을 방지·차단·정화할 의무를 지며, 시설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위험관리계획(Risk Management Plan, RMP)을 수립·이행해야 한다. 위험관리계획에는 시설 평면도, 연간 취급량과 손실량, 유출 가능 지점과 작업 공정, 예방·격리·정화 조치와 절차 등이 포함돼야 한다.
규정은 취급 규모에 따라 의무 수준을 차등 적용한다. 전년도 취급량이 1,500톤 미만인 시설 운영 기업은 시설별 위험관리계획과 자체 적합성 선언서를 5년마다 갱신·통지해야 한다. 반면 1,500톤 이상을 취급하는 시설 운영 업체는 제3의 적합성 평가기관(certifier)으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하며, 기업 규모에 따라 인증 기한과 갱신 주기가 다르게 설정됐다.
대기업은 2027년 12월 17일까지 인증을 취득해야 하고 이후 3년마다 갱신해야 하며, 중기업은 2028년 12월 17일까지 인증 취득 후 4년마다 갱신 의무가 적용된다. 소기업은 2030년 12월 17일까지 인증을 취득해야 하며, 인증 유효기간은 5년이다.
규정 위반에 대한 제재도 강화됐다. 운영 업체가 중대한 규정을 위반할 경우, 회원국은 금전 제재의 법정 상한을 전년도 EU 내 연간 매출액의 최소 3% 이상으로 설정해야 한다.
생산·유통 단계로 규제 확대...한국 수출 기업 ‘사전 대응’ 필요
EU 집행위원회는 규정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2026년 12월 17일까지 인식 제고 및 교육 자료를 개발하고, 유럽 표준화 기구에 플라스틱 펠릿 손실량 산정을 위한 조화 표준 마련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회원국 간 이행 편차를 줄이고 규정 적용의 일관성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간한 EU 경제통상 브리핑(제25-95호)에 따르면 "이번 규정은 EU가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생산·유통 단계에서 관리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한 첫 사례"로, "향후 플라스틱 원료를 취급하거나 EU 시장과 연계된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EU에 플라스틱 원료를 수출하거나 EU 역내에서 펠릿을 취급·운송하는 한국 기업들은 단순한 환경 규제 대응을 넘어 공급망 관리 체계 전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연간 취급량 5톤 이상 여부를 기준으로 적용 대상에 해당하는지 조속히 확인하고, 유출 가능 지점과 작업 공정을 반영한 위험관리계획(RMP) 수립, 내부 관리 절차 문서화, 운송·보관 단계의 관리 강화가 요구된다.
특히 연 1,500톤 이상을 취급하는 기업의 경우 향후 제3자 인증 취득이 사실상 필수 요건이 되는 만큼, 인증 일정과 비용을 중장기 경영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EU가 규정 위반 시 매출액 연동형 제재를 명시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 규정은 환경 규제를 넘어 무역·거래 리스크 관리 차원의 선제 대응 과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