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급망 '불법 산림벌채' 의무실사 도입…EU 기준 맞춘다

영국 정부가 기업들에게 공급망에서 불법 산림벌채와 연계된 원자재 사용 여부를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는 새로운 규제 도입에 나선다.

유럽연합(EU)의 산림벌채방지규정(EUDR)과 핵심 기준을 맞추기로 하면서 영국과 거래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 기준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런던 기후행동주간(London Climate Action Week)을 계기로 환경법(Environment Act)과 영국 목재규정(UK Timber Regulations) 개정을 포함한 새로운 산림벌채 규제 계획을 발표했다. 연내 기업과 시민사회, 국제 파트너를 대상으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한 뒤 세부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다.

EU와 동일한 기준 적용…기업 행정부담 최소화

새 규정이 시행되면 대두(콩), 팜유, 코코아, 고무 등 열대우림 지역에서 생산되는 주요 원자재를 취급하는 기업은 공급망이 불법 산림벌채에 기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해당 원자재는 초콜릿, 식용유, 화장품, 샴푸, 세제 등 일상 소비재에 폭넓게 사용된다.

영국 정부는 장기적으로는 단순히 '불법 산림벌채'를 막는 수준을 넘어, 모든 관련 제품이 산림 훼손 없이 생산되는 '산림벌채 제로(Deforestation-free)' 기준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새 제도가 EU 산림벌채방지규정(EUDR)과 동일한 핵심 상품 범위와 기본 정보 요건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영국과 EU를 동시에 상대하는 기업들이 서로 다른 규정을 따르느라 발생하는 행정 부담을 줄이고, 공급망 데이터와 추적성(traceability) 기준을 일원화하기 위한 조치다.

"영국 소비가 연간 2만9000㏊ 산림벌채 유발"

특히 북아일랜드에는 윈저 프레임워크에 따라 EUDR이 2026년 12월 30일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영국 정부는 영국 본토 역시 유사한 기준을 적용해 영국 국내시장과 북아일랜드 간 규제 차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영국 정부가 규제 강화에 나선 배경에는 영국 소비가 해외 산림파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에 바탕을 둔다. 이에 따르면 영국의 국제 거래 상품 소비는 매년 약 2만9000헥타르(맨체스터 면적의 약 1.5배)의 산림벌채와 약 940만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 산림벌채의 약 90%는 농업 확장과 관련돼 있으며, 상당 부분이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농산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다.

메리(Mary Creagh)영국 자연부 장관은 "전 세계 산림벌채를 해결하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과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라며 "불법 산림벌채와 연결된 제품을 공급망에서 제거하는 것은 생태계뿐 아니라 경제의 장기적인 회복력과 번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유통업계·환경단체 "EU와의 규제 정합성 중요"

영국 유통업계도 이번 규제를 환영했다. 영국소매협회(BRC)의 앤드류 오피 식품·지속가능성 담당 이사는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며, 영국 규정이 EU와 최대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기업과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결정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영국이 EU와 사실상 동일한 공급망 실사 체계를 채택할 경우, 유럽 시장에 수출하는 국내 식품·화장품·생활용품 기업들은 원산지 증명과 공급망 추적 시스템을 영국과 EU 모두에 맞춰 구축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팜유, 코코아, 천연고무, 대두 등을 사용하는 식품·화학·타이어·생활용품 업계는 공급망 실사와 데이터 관리 역량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EU에 이어 영국까지 공급망 기반 환경규제를 강화하면서, 탄소배출뿐 아니라 생물다양성과 산림보전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형태의 무역규범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도 단순한 규제 대응 차원을 넘어 공급망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수출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