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주류화, 디지털 투명성..아시아개발은행 미래 전략
아시아개발은행(ADB)이 환경·사회 기준(ESS)을 전면 개편하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을 환경·사회 관리체계에 본격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사후 규제형’ 안전망을 넘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예측·투명·참여형 관리모델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방향은 2009년 ‘세이프가드 정책’ 이후 16년 만의 흐름이다.
ADB가 구상하는 차세대 ESS는 한마디로 ‘디지털 감시망’이다. AI는 위성영상과 사회경제 데이터를 결합해 사업지의 환경·사회 리스크를 조기 진단하고, 블록체인은 사업 진행 과정의 민원·보상·피해 신고를 투명하게 기록한다.
기술 통합 추진 배경...‘리스크 관리’에서 ‘리더십’으로
또 IoT 센서망은 공기질·수질·소음 등 환경지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이상이 감지되면 자동 알림을 보낸다. 즉 AI 기반 리스크 예측 모델, 블록체인 보상 시스템, IoT 환경 모니터링 네트워크' 등의 핵심 기술은 ADB의 투명성·책임성 강화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ADB가 이렇게 기술 통합을 추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매년 400개 이상의 프로젝트, 200억 달러 규모의 대출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문서·현장 중심 관리로는 복잡한 환경·사회 리스크를 제때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ESS 초안(공개 검토를 위한 초안은 ESS 1, 2, 4, 5, 7, 8, 9, 10호 및 금융중개기관·기업금융 지침 포함)에 대해 의견서를 낸 제이든 윤(Jayden Yoon)은 이를 공개하며 "AI와 블록체인의 결합은 개발은행의 책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ADB의 개편은 기준 정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 발전 리더십’ 확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그는 "ADB의 새 프레임워크는 기후변화 대응과 사회 포용을 전 사업에 통합하는 구조”라며 “개발도상국의 제도 역량 차이를 고려하면서도 국제 수준의 보호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평가했다.
“2030년까지 기후 투자 75%”…국제개발 새 패러다임
‘ESS9: 기후변화 완화·적응’ 항목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적응을 동등하게 다루며, 지역별 기후 리스크 분석과 ‘적응 효과성 측정 시스템’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ADB가 2030년까지 전체 금융의 75%를 기후 관련 투자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이다.
또 ‘ESS7: 원주민 참여’, ‘ESS10: 이해관계자 참여’ 등은 '기후 적응과 문화권 보존을 연계한 ‘참여형 거버넌스’가 핵심이다. 특히 “현지 공동체가 전통지식과 기술로 적응 전략을 설계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ADB의 새 프레임워크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세계은행(WB), 녹색기후기금(GCF) 등 주요 다자개발은행(MDB)의 기준을 비교·분석한 결과물이다.
제이든 윤은 "그중에서도 ADB가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부분은 ‘기후 주류화와 디지털 투명성의 결합’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시아판 ‘ESG 거버넌스’ 시험대로 작용할 것
EBRD가 ‘자연기반 해결책(NbS)’을 강조하고, GCF가 ‘지역 공동체 직접 접근 메커니즘’을 추진하는 동안, ADB는 여기에 AI·블록체인 기술을 통합해 전 과정을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하려는 모양새다. ADB가 ESS 혁신을 통해 동남아·태평양 지역에서 지속가능 금융의 표준을 주도하려는 목표를 내비친 것이다.
만약 이번 개편이 확정되면 ADB 내부뿐 아니라 회원국의 정책·법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ADB 사업이 각국의 인프라·금융·기후 프로젝트의 준거가 되는 만큼, 새로운 ESS는 ‘아시아판 ESG 거버넌스’의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의존이 심화될수록 데이터 접근권과 개인정보 보호, 디지털 격차 문제가 새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AI와 블록체인은 투명성을 높이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관리 역량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ADB는 기술 도입과 동시에 인권·포용 기준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풀어가야 한다. 즉, ADB의 새 ESS는 기후위기 시대의 금융철학을 시험하는 ‘디지털 거버넌스 실험’이다. 결국 기술과 인간, 성장과 지속가능성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향후 아시아 개발금융의 신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