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밸류업'은 어떻게 가능한가...“신뢰가 자본이 되어야"
“지수의 상승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의 회복이다.”
책 '넥스트 밸류업'(신지윤 지음, 메디치미디어)은 단순한 ‘주가 상승론’을 설파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의 가치 구조(Value System)를 근본부터 다시 세우자고 제안한다.
저자 신지윤은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 신뢰를 복원하고, 제도·시장·거버넌스의 틀을 함께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코스피 5000’ 목표도 주가 목표가 아니라 “정책과 시장, 기업 지배구조의 재편 신호”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기후·금융이 얽힌 ‘삼중 리스크’는?
그동안 한국 증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굴레에 갇혀 있었다. 외국인 자금은 떠나고, 벤처기업은 미국으로 향했으며, 퇴직연금은 예금 수준의 수익률에 머물렀다. 특히 AI와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이 동시에 덮쳤다. 이른바 '삼중 리스크'다.
책은 이 난관을 극복하려면 전력과 기후, 금융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AI 시대의 경쟁은 더 이상 데이터의 싸움이 아니라 전력의 전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한국전력공사는 전력 리스크의 본진이다. 부채 구조, 송전망 포화, 재생에너지 병목, 지자체 인허가 문제 등 한국의 산업 경쟁력 잠식의 핵심이다.
저자는 “기후를 다스리는 나라는 전기를 다스리는 나라”라며, 전력 개혁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이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는 이유를 전력 정책의 경직성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부족이라고 단언한다. “전력 개혁 없이는 기후위기 대응도, 밸류업도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코스피 5000은 구조개혁으로 가능하다
더 나아가 악순환의 근본 원인은 △자본시장 불신 △비효율적 지배구조 △부동산 편중 자산구조 △연기금의 소극적 운용으로 짚고 그 해법으로 ‘밸류업 2.0’을 제시한다. 이는 단기 주가 부양이 아닌 ROE(자기자본이익률) 제고와 COE(자기자본비용) 절감을 제도화하는 구조적 개혁이다.
그 실마리를 ‘이윤과 윤리를 결합한 새로운 주주주의’인 ESG로 내세운다. ESG는 비용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이며, 장기 가치 창출의 언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달라진 시장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국민연금이 단순한 ‘주식 보유자’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감시하는 기관투자자’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민연금의 한 표는 이제 국가 자본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그널이 되었"기 때문이다.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임원 보수 한도 조정, 탈석탄 투자제한 등 국민연금의 ‘호시우보(虎視牛步)’식 개입이 한국형 ‘시장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ESG, 이윤과 윤리 결합한 ‘새로운 주주주의’
책은 기후위기 대응을 ‘환경 의제’가 아닌 ‘경제 전략’으로 규정한다. RE100(기업 재생에너지 100%)과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등 새로운 무역질서 속에서, “전기가 없으면 수출도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 이후 글로벌 ESG 흐름이 요동쳤지만 저자는 이를 ‘퇴행’이 아닌 ‘재정렬’로 봤다. “속도는 늦췄지만,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식 실용주의는 석유·셰일·태양광의 공존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 질서를 재편하고 있는데 이는 에너지를 정치로 재배치하는 실용주의인 셈이다. ESG는 사라지지 않고 현실과 타협하며 더 전략적인 언어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다음 사이클은 숫자가 아닌 신뢰, 속도가 아닌 구조, 그리고 이윤이 아닌 윤리에서 시작될 수 있을까? 책 '넥스트 밸류업'이 질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