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복구와 탄소시장 결합한 바이오매스 매립 모델 뜬다
미국에서 산불 피해 복구와 탄소배출권 시장을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산불이 빈번해지는 한국에도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2016년 설립된 산림 복구 전문기업 마스트 리포레스테이션(Mast Reforestation)은 최근 몬태나주에서 추진 중인 바이오매스 매립 기반 탄소 제거 프로젝트 ‘MT1’에서 발행된 4,277개 탄소 크레딧이 6주도 채 되지 않아 전량 판매됐다고 밝혔다. 이번 크레딧은 글로벌 컨설팅사(Bain&Company)와 캐나다 금융기관(Bank of Montreal, Royal Bank of Canada) 등이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트 리포레스테이션(Mast Reforestation)은 미국의 산림 복원 기술 기업으로, 산불로 파괴된 숲을 빠르게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드론, 종자 과학, 나무 묘목 재배, 탄소 크레딧 시스템을 결합하여 대규모로 복원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본사는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다.
소실된 나무를 지하에 매립해 탄소를 저장한다
이 프로젝트는 산불로 소실된 나무를 단순 소각하는 대신 지하에 매립해 탄소를 장기 저장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산불 피해목은 현장에서 소각되며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매립을 통해 탄소 방출을 억제하고 이를 ‘탄소 제거 크레딧’으로 전환하는 구조다.
동시에 확보된 재원을 다시 조림과 생태계 복원에 투입하는 선순환 모델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MT1 프로젝트는 2021년 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몬태나 남부 약 900에이커 산림을 복원하기 위해 시작됐으며, 국제 탄소인증 플랫폼 Puro.earth에 등록된 뒤 약 9개월 만에 크레딧 발행까지 완료됐다.
이는 기존 탄소 제거 프로젝트 대비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마스터 리포레스테이션 측은 “탄소 크레딧 판매 수익이 실제 산림 복구 작업에 직접 투입되고 있다”며 “산불 복구 재원을 시장 기반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산불 피해가 대형화·상시화되는 한국 상황과 맞물려 주목된다. 국내에서는 매년 봄철을 중심으로 동해안과 영남권에서 대형 산불이 반복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 규모와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 ‘산불 상시화’ 속 새로운 복구 모델 필요
특히 기존 복구 방식은 ▲긴급 벌채 후 소각 ▲국비 중심의 사후 복구 ▲단기 조림 사업 등에 의존해 왔다. 이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추가로 발생하고, 재원 확보 역시 정부 예산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와 비교할 때, 바이오매스 매립 기반 탄소 크레딧 모델은 세 가지 측면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먼저 탄소를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전환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산불 피해목을 처리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을 수 있다.
또 민간 자본 유입 구조를 형성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ESG 전략 차원에서 탄소 제거 크레딧을 구매하면서 복구 재원이 다변화된다.
이는 복구와 기후 대응의 통합으로 볼 수 있다. 산림 복원을 넘어 탄소중립 정책과 직접 연결되는 관점이다. 다만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과제가 지적된다.
“산불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바꾸는 발상 전환”
우선, 탄소 제거 크레딧의 국제적 신뢰성 확보가 핵심이다. 글로벌 인증 체계(Puro.earth)와 연계하거나, 이에 준하는 국내 인증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바이오매스 매립의 환경적 안정성 검증도 요구된다. 장기 매립 과정에서 토양·수질에 미치는 영향, 탄소 저장의 지속성(permanence) 등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산림청 중심의 공공 관리 체계에서 벗어나 민간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 설계 역시 과제로 꼽힌다. 현재 국내 탄소시장(K-ETS)은 주로 배출권 거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탄소 제거’ 크레딧에 대한 제도적 기반은 아직 초기 단계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산불 대응 패러다임을 전환할 시점에 와 있다고 지적한다. 산불 이후의 처리 과정 자체를 기후산업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동해안 대형 산불 사례처럼 피해 면적이 수천 헥타르에 이르는 경우, 기존 방식으로는 복구 비용과 탄소 배출 부담이 동시에 증가할 수밖에 없다.
반면 바이오매스 기반 탄소 제거 모델은 이러한 부담을 시장 메커니즘으로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산불이 더 이상 일회성 재난이 아니라 구조적 위험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복구 방식 역시 ‘재난 대응’에서 ‘기후·산업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