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밀려오자, 사람이 떠났다”...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의 경고등

부산 영도 앞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는 더 이상 자연 현상으로서 바라볼 일이 아니다. 해수면 상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도시의 계층 구조를 다시 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워킹페이퍼 '기후 젠트리피케이션, 바다 넘어온 경고와 우리의 대응'은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를 넘어 도시와 계층의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기후 젠트리피케이션(Climate Gentrification)’이란 낯선 단어를 제기했다.

미국 마이애미 해안가는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의 긴 그림자를 만날 수 있는 대표적 장소다. 해수면 상승에 불안을 느낀 이곳 부유층들이 인근 리틀하이티의 고지대로 이주하면서, 원래 그 지역에 살던 저소득층은 임대료 상승에 밀려 이주하게 됐다. 기후변화로 사회적 약자들이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을 떠난 것이다.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의 세 가지 발생 경로. 자료 출처: Keenan, Hill, and Gumber, 2018의 자료를 김다윗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번역·수정하여 재구성. 이미지 출처: 보고서에서 캡처

마이애미, 코펜하겐도 서민만 피해를 입는다

세계 곳곳이 이미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보고서는 마이애미 사례를 '우위지역 투자 경로'로 정의했다. 부유층이 해안가를 떠나 인근 지대로 이동하면서 상대적으로 빈곤층인 이민자 커뮤니티가 쫓겨난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최근 들어 침수 피해가 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베네치아 시민들이 반복되는 침수 대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떠나는 현실은 '비용부담' 경로에 해당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방재 기능을 갖춘 공원을 조성하자, 오히려 임대료와 세금이 올라 원주민이 밀려났다. 이는 '방재투자 경로'다. 세 가지 유형은 모두 기후위기 대응이 역설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들 지역에서는 모두 정치적 현안으로 다뤄지고 있다. 마이애미 시의회는 이미 2018년 ‘R-18-0501 결의안’을 통과시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할 세제 및 주거정책 수립을 지시했다.

해수면 상승은 새로운 주거 경계선을 긋는다

한반도의 해수면 상승 속도도 심상치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연안의 평균 해수면은 3.9㎝ 상승, 이전 10년(2.8㎝)보다 상승 속도가 뚜렷하게 빨라졌다

국립해양조사원은 “2100년까지 최대 1.1m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천, 부산, 목포 등은 이미 잠재적 침수 위험지역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문제는 물이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이다. 서울의 반지하 가구, 인천 연안 저지대 주민, 그리고 부산 영도·해운대의 고령 주거지 등은 물리적 침수뿐 아니라 주거비 상승과 지역 재편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보고서는 "물리적 방재 대책만으로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며 “인구 이동, 부동산 가치 변동, 사회적 불평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수 예측, 침수 대응만으로는 불평등 심화한다

그러나 한국의 관련 연구와 정책 대응은 '홍수, 침수, 폭염' 등 단기 재난의 물리적 피해 예측에 치중되는 등 초기 단계다. 전국 침수 흔적 정보와 실거래 데이터를 결합해 침수 100m 이내 주택이 평균 2.8% 하락했다는 연구가 있었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 젠트리피케이션, 인구 이동은 분석 범위 밖이었다.

보고서는 "AI 기반의 도시 시뮬레이션을 통해 해수면 상승이 주택시장, 인구, 지역 불평등에 어떤 연쇄적 영향을 미칠지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오늘날 기후위기는 결국 누가 어디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 즉, 계층 구조를 재편하는 새로운 도시 불평등의 문제로 대응해야 한다.

과거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자본의 논리’였다면,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은 ‘자연의 논리’에 편승한 자본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마이애미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곧 부산과 인천의 해안도로, 서울의 반지하 골목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