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공시, 수치보다 ‘조직경계’가 생명… 재무·회계 통합 대응 시급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환경에서는 단순한 '탄소 배출량 수치' 자체보다, 해당 수치를 도출하기 위해 기업이 설정한 '조직경계(Organizational Boundary)'와 '측정접근법'이 자본시장 정보 이용자들에게 훨씬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6일 한국회계기준원(KSSB)과 공동으로 개최한 '2026 ESG 포럼'에서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의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공시를 위한 스코프 1·2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시 고려사항」교육자료에 따르면, 기업은 원칙적으로 'GHG 프로토콜 기업 기준'에 따라 스코프 1·2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 환산량(tCO2e)으로 측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기업이 통제하는 운영의 경계를 뜻하는 '조직경계'의 설정이다. 이때 재무통제, 운영통제, 지분율 접근법 중 어떤 방식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근거와 공시 목적 부합성을 투명하게 명시해야 한다.
재무통제·운영통제·지분율… 접근법 따라 배출량 차이
일단 기업은 재무통제, 운영통제, 지분율 등 세 가지 접근법 중 하나를 선택해 배출량을 산정할 수 있다. '재무통제'는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향유하기 위해 재무·운영 정책을 지시하는 사업장의 배출량을 100% 포함한다.
'운영통제'는 운영 정책을 도입하고 실행할 권한을 가진 사업장의 배출량을 100% 포함한다. 반면 '지분율 접근법'은 기업이 보유한 경제적 이해관계(지분율)에 비례하여 배출량을 집계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동일한 피투자기업에 대해 동일한 지분을 보유하더라도, 선택한 조직경계 접근법에 따라 산정되는 배출량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업 A가 총배출량 1,000tCO2e인 기업 B의 지분을 60% 보유한 경우, 지분율 접근법을 쓰면 600tCO2e만 보고하지만, 재무통제나 운영통제 권한이 있다고 판단되면 1,000tCO2e 전체를 보고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총배출량 수치만으로 기업 간 탄소 감축 성과를 단순 비교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하며, 기업은 어떤 접근법을 왜 선택했는지 밝혀야 한다.
국내 배출권거래제(ETS) 데이터 공시에 써도 되나
국내 약 1,000개 기업이 적용받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 및 목표관리제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간의 차이도 중대한 실무적 과제로 지목됐다.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은 관할권 규정에 따른 측정방법 사용을 완화 규정으로 허용하고 있어, 기업들은 국내 제도에 따른 배출량을 공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제도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배출권거래제는 규제 및 감축이 목적인 반면, 지속가능성 공시는 투자자를 위한 재무 정보 제공이 목적이다. 따라서 배출권거래제 지침에 따라 측정된 배출량을 활용하더라도, GHG 프로토콜 기업 기준과 상충하는 부분은 조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배출권거래제에서는 특정 용처 사용을 위해 포집·이동한 이산화탄소를 총배출량에서 차감해주거나 바이오매스 연소 배출량을 총량에서 제외하지만, GHG 프로토콜에서는 이를 총배출량에 포함하거나 별도로 명확히 보고해야 할 수 있다.
회계상 '연결실체'와 배출량 보고의 불일치 극복해야
재무보고 체계와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체계의 일관성 확보도 주요 화두다. KSSB 기준은 기업이 회계상 '연결실체' 내에서 발생한 배출량과 그 외 피투자자(관계기업, 공동기업 등)에서 발생한 배출량을 반드시 명확하게 구분(세분화)하여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K-IFRS(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종속기업은 연결재무제표에 100% 포함되지만, 지분법을 적용하는 관계기업이나 공동기업은 단일 항목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온실가스 측정 시 '운영통제 접근법'을 채택했다면, 재무제표상 연결 대상이 아닌 물류센터나 공동기업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실질적인 운영 권한을 행사한다면 그 배출량을 100% 보고해야 한다. 이 경우 해당 배출량은 '회계상 연결실체에 포함되지 않는 피투자자 배출량'으로 따로 세분화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더불어, 지배기업과 종속기업 간 전력을 생산해 판매하는 등 내부거래가 발생할 경우, 연결실체 단위로 배출량을 통합할 때 '스코프 1'과 '스코프 2' 배출량이 중복으로 집계되지 않도록 제거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리스 자산과 스코프 2 계약 상품 공시 등 신뢰성 유의
부동산이나 설비 등의 리스(Lease) 계약 역시 골칫거리다. 금융리스냐 운용리스냐, 그리고 기업이 어떤 조직경계 접근법을 채택했느냐에 따라 임차인과 임대인의 배출량 인식(스코프 1·2에 넣을지, 스코프 3에 넣을지)이 달라진다.
또한 스코프 2(간접배출량) 산정 시 지역기반(Location-based)과 시장기반(Market-based) 접근법을 명확히 하고,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나 전력구매계약(PPA) 등 계약 상품이 존재할 경우 해당 특성을 추가로 공시하여 정보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이처럼 온실가스 공시가 고도화되면서, 배출량 산정은 더 이상 환경·안전 부서의 국지적 실무로 머물 수 없게 되었다.특히 탄소 데이터는 회계·재무·지배구조·운영이 연결된 경영 데이터인 만큼, 기업의 ESG 담당뿐 아니라 재무, 회계, 전략 조직의 통합적 대응이 요구된다.
박인산 SK실트론 지속가능성관리팀장은 자신의 링크드인 계정에서 "향후 ISSB/KSSB 기반 지속가능성 공시가 본격화될수록, 기업들은 단순 배출량 산정보다 어떤 기준과 논리로 측정·통합·공시했는가에 대한 설명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