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전략의 핵심 질문, 무엇을 위해 크레딧을 사는가

탄소 크레딧 시장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몇 년간 신뢰성 논란과 가격 하락, 수요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장이 올해 들어 반등 조짐을 보이면서 기업 최고전략책임자(CSO)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엇을 살까?”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까?”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3년 탄소 크레딧 가격은 여러 유형에서 급락하며 시장이 얼어붙었다. 기업들이 ‘넷 제로’ 선언에 활용한 크레딧이 실제 감축 효과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잇따르면서 신뢰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4% 축소됐다.

그러나 2024년 1분기에는 5,500만 톤에 달하는 탄소 크레딧이 소각(retired)됐다. 이는 역대 세 번째로 큰 규모다. 과학기반감축목표(SBTi)의 가치사슬 밖 감축(BVCM) 가이드라인, 자발적탄소시장무결성위원회(VCMI)의 탄소 무결성 클레임 등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면서 신뢰 회복의 단초가 마련된 덕분이다.

탄소 크레딧은 대기에서 1톤의 탄소를 제거하거나 배출을 방지한 결과로, 프로젝트 설계 문서(PDD) 작성과 제3자 검증을 거쳐 발행된다. 이후 모니터링·보고·검증(MRV) 과정을 통해 성과가 확인되면 선택된 표준에 따라 크레딧이 공식 발행된다. 이미지 출처: 보고서에서 캡처
Workday&Patch

탄소 제거 1000배 확대·자금 5조 달러 필요

IPCC 6차 종합보고서는 203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로 제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이를 되돌리려면 2050년까지 순음(-) 배출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탄소 제거(CDR) 규모는 목표치와 큰 격차를 보인다. 옥스퍼드 원칙은 2030년까지 30배, 2050년까지 1000배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격차를 메우기 위해 막대한 기후 자금이 요구된다. IMF는 연간 1조 달러에서 2030년까지 최대 5조 달러가 필요하며, 이 중 절반은 민간 자본이 감당해야 한다고 추정한다. 크레딧은 바로 이 자금을 흡수하는 신속한 통로다.

전문가들은 “탄소 크레딧은 기업의 기후 전략을 완성하는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CSO는 단순히 예산에 맞는 크레딧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기업의 기후 및 비즈니스 목표는 무엇인가?” 등 전략에 기반하여 결정해야 한다.

또 회피·저감·제거, 자연 기반·기술 기반 프로젝트를 혼합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등 체계적인 포트폴리오 설계해야 한다. 특히 순배출 제로 선언에 그치지 말고, 감축량·크레딧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등 투명성 확보를 이끌어야 한다.

워크데이 사례, 단기 성과와 장기 투자 병행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워크데이(Workday)는 SBTi 검증을 받은 1.5℃ 경로에 맞춰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오피스 전력 100% 재생에너지 전환하고, 불가피한 배출에 대해서는 고품질 크레딧 구매한다. 또 프론티어 연합 참여를 통한 10억 달러 규모의 선도시장 약정(AMC)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아마존 REDD+, 메탄 감축 프로젝트, 바이오차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단기 성과와 장기 투자, 회피와 제거를 병행하는 접근이 기업 기후전략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탄소 크레딧 시장은 여전히 과제가 많다. 공급은 기술·생태적 한계로 경직돼 있고, MRV(측정·보고·검증)의 과학적 정교화도 필요하다. 동시에 캘리포니아 AB 1305 법안과 EU의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 등 규제 환경은 기업의 투명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탄소 크레딧은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한 ‘필요악’이자 ‘가교’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워크데이(Workday)와 기후 솔루션 플랫폼 패치(Patch)가 공동으로 발간한 '기업 최고지속가능책임자를 위한 탄소 크레딧 플레이북(Carbon Credit Playbook for Chief Sustainability Officers)'에 따르면 “지속가능경영 전략의 핵심은 구매 행위가 아니라 기업이 세운 목표와 이행 방식에 있다”며, “CSO의 진짜 과제는 크레딧을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기후 전략을 설계하고 실질적 감축을 이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 주: 탄소상쇄권(Carbon Offset, Carbon Credit) 은 개인·기업·국가 등이 자체적으로 줄이기 어려운 온실가스 배출량을 다른 곳에서 감축하거나 흡수한 실적을 구매함으로써 상쇄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거래되는 단위는 탄소 크레딧(Carbon Credit) 으로, 일반적으로 온실가스 1톤 CO₂e(이산화탄소 환산량) 감축·제거 실적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