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지속가능성 투자 늘리면서도 ‘선택과 집중’…“ROI·회복탄력성 따진다”
글로벌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투자를 계속 확대하면서도 관련 사업의 추진 방식은 ‘확산’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지속가능성 활동의 범위를 넓히기보다 투자 대비 수익률(ROI), 비용 절감, 위험 관리, 회복탄력성 등 구체적인 사업 성과를 중심으로 지속가능성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딜로이트 글로벌이 발표한 지속가능성 보고서(2026 C-suite Sustainability Report)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78%가 지난 1년 동안 지속가능성 투자를 늘렸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18%는 투자 규모를 20% 이상 확대했다고 응답했다. 반면 지속가능성 투자를 줄였다고 답한 기업은 2%에 그쳤다.
이번 조사는 시장조사기관 KS&R이 딜로이트 글로벌을 대신해 2026년 5~6월 29개국의 최고경영진 2,156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 대상에는 매출 5억 달러 이상 기업의 다양한 산업군이 포함됐다.
지속가능성 사업, ‘많이’보다 ‘효과 있게’
눈에 띄는 변화는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사업의 숫자를 줄이는 대신 개별 사업의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추진한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는 지난해 평균 5.0개에서 올해 3.4개로 감소했다. 응답 기업의 약 60%는 정확히 3개의 지속가능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5개 이상의 사업을 추진한다는 응답은 14%에 불과했다.
딜로이트는 이를 지속가능성 전략이 ‘열망적(aspirational)’ 단계에서 ‘운영적(operational)’ 단계로 이동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별도의 사회적 책임 활동으로 보기보다 실제 경영 활동에 통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속가능성을 조직 전반에 내재화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지난해 39%에서 올해 47%로 증가했다. 반면 지속가능성 대응을 위해 사업모델 자체를 전환하고 있다는 기업은 40%에서 18%로 크게 감소했다. 공시나 규제 대응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경영 전반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전략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속가능성 투자 기준도 ‘재무적 가치’로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사업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무적 성과였다.잠재적인 투자 가운데 무엇을 우선 추진할지를 결정할 때 51%가 재무적 이익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지속가능성 목표 달성이나 환경적 성과를 최우선으로 본 응답은 26%, 간접적·무형자산 효과를 우선한 응답은 23%였다.
특히 실제 투자 성과에 대해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응답자의 77%는 지속가능성 투자의 ROI가 다른 사업 투자보다 높다고 평가했다. 이 가운데 23%는 ‘상당히 높다’, 54%는 ‘다소 높다’고 답했다. 반대로 낮다고 평가한 응답은 2%에 불과했다.
지속가능성 투자가 만들어내는 사업적 효과도 광범위했다. 기업들은 매출, 비용 절감, 위험 및 회복탄력성, 브랜드·평판, 규제 준수 및 거버넌스 등 주요 경영 성과 전반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딜로이트는 이에 대해 지속가능성의 가치가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매출 증가 하나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위험 관리, 회복탄력성, 고객 신뢰, 혁신 역량, 장기적인 시장 지위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기업가치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후변화, ‘환경 문제’ 넘어 경영 리스크로
기후변화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영진의 인식도 높아졌다. 응답자의 63%는 향후 3년 동안 기후변화가 기업의 전략과 운영에 높은 수준 또는 매우 높은 수준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3~5년 동안 기업이 가장 큰 지속가능성 관련 물리적 위험으로 꼽은 것은 극한기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19%)이었다. 이어 극한기상에 따른 시설·인프라 손상 및 가동 중단(16%), 원자재 등 투입요소의 부족 또는 비용 상승(15%), 보험료 상승 및 보험 가입 불가능 위험(14%)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위험을 실제 경영관리 체계에 완전히 통합한 기업은 아직 제한적이다. 지속가능성 관련 물리적 위험을 기업 리스크 관리체계에서 '완전히 통합해 정기적으로 모델링하고 있다'는 응답은 32%였으며, 55%는 특정 위험 영역에 부분적으로 통합한 수준이었다.
지속가능성 실행의 핵심 수단은 ‘기술’
지속가능성 실행에서 기술의 역할도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전략의 일환으로 가장 많이 추진한 사업은 지속가능성 목표 달성을 위한 기술 솔루션 도입이었다.
그 뒤를 환경지표 추적·분석, 극한기상에 대비한 운영·인프라·공급망 재편, 공급업체와 사업 파트너의 지속가능성 기준 준수 요구 등이 이었다.
특히 기술 솔루션을 적용하는 영역을 보면 지속가능성 데이터 및 성과의 내부 모니터링이 49%로 가장 높았다. 이어 공급망 환경성과 모니터링·관리 48%, 위험 완화 및 관리 47%, 지속가능성 데이터의 외부 보고 46%, 새로운 지속가능 제품·서비스 개발 45%, 프로세스 및 운영 효율화 41% 순이었다.
이는 지속가능성 기술이 단순한 환경 데이터 수집을 넘어 공급망 관리, 리스크 분석, 외부 공시, 제품개발, 운영 효율화 등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는 빠르게 확산됐지만 아직 ‘실험 단계’
AI 역시 지속가능성 분야에서 주요 기술로 자리 잡고 있지만, 실제 기업 현장에서의 활용 수준은 아직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의 49%는 지속가능성 분야 AI를 특정 파일럿 프로그램에 적용하고 있었으며, 20%는 실험 단계지만 아직 본격적인 규모 확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답했다. 반면 여러 지속가능성 활용 사례에 AI를 본격적으로 확장해 적용하고 있다는 응답은 29%였다.
AI 활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데이터의 가용성과 품질(20%)이었다. 이어 거버넌스·리스크 우려(17%), 기존 시스템과의 통합 문제(17%), 투자 재원 및 우선순위(16%), 불명확한 ROI와 사업성(15%), 인력·기술 격차(15%) 등이 꼽혔다.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성 분야 AI 활용도 역시 데이터 기반과 명확한 사업성이 확보되느냐에 따라 확산 속도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선택과 집중’ 속에서도 장기 혁신 놓치지 말아야
딜로이트는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사업을 보다 엄격하게 선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단기적인 재무성과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업들이 추진하는 지속가능성 활동의 조합은 매우 다양했다. 조사에서 제시한 12개 지속가능성 활동을 기업들이 조합하는 방식은 800가지에 달했으며, 가장 많이 나타난 조합조차 15명의 응답자만이 선택해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정한 하나의 지속가능성 전략이 모든 기업에서 동일하게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딜로이트는 이에 따라 기업들이 자사의 사업 특성과 목표에 맞춰 지속가능성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기적으로 명확한 사업성과를 내는 사업은 확대하되, 아직 ROI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혁신 분야에 대해서는 선택적인 투자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딜로이트의 이번 보고서는 결국 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성 전략이 ‘더 많은 활동’에서 ‘더 높은 사업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기업의 부수적인 ESG 프로그램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데이터·공급망·리스크 관리·제품 혁신을 결합해 기업의 경쟁력과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경영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