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늘수록 정전 위험도 커진다”...디지털 제어능력 관건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전력계통은 관성 저하, 전압 제어 한계, 공진(진동) 등 새로운 불안정에 노출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단법인 넥스트그룹은 최근 발간한 ‘인버터 기반 미래 그리드의 청사진’ 보고서에서 2025년 스페인-포르투갈 대정전과 남호주(2016), 영국(2019) 사례를 “IBR(인버터 기반 자원) 확대 국면에서 나타난 경고등”으로 진단하며, 미래 전력망의 핵심 과제로 인버터 기술 진화와 계통 운영체계 고도화를 꼽았다.

올 4월 28일 이베리아반도 대정전 사태는 단일 원인 사고가 아니라, 과전압·전압제어 능력 부족·계통 진동·발전기 차단 등 복합 요인이 연쇄적으로 겹친 사건이었다.

인버터 기반 분산전원의 구조. 전력계통에 연계된 인버터는 DC 전원과 인버터 그리고 AC 전력계통으로 구성된다. 이 때,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인버터를 기준으로 DC 전원에서는 에너지가 공급, 전력계통으로는 에너지가 소비된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보고서에서 캡처.
사단법인 넥스트그룹

'인버터 세대교체’가 안정도 좌우…3세대 부상

스페인 정부(친환경전환 및 인구변화대응부)는 과전압에 의한 시스템 붕괴 가능성을 언급했고, 사고 전날 전압 조정이 가능한 동기발전기 확보가 연중 최저 수준이었으며 일부 설비가 지시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인버터는 계통 안정도 기여 수준으로 보면 1~3세대로 나뉜다. 1~2.5세대는 ‘계통을 따라가는(Grid-Following)’ 전류원 중심 기술에 FRT(고장 시 연계 유지), Volt-Var(전압·무효전력 제어), 가상관성 같은 기능을 덧붙이며 발전했지만, 약계통에서의 연계 유지와 블랙스타트(정전 후 기동)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

보고서는 3세대 인버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인버터는 전압원처럼 동작하는 ‘Grid-Forming’ 계열로, 약계통·블랙스타트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다만 3세대도 고장전류 공급 능력은 여전히 숙제다.

미래 계통 안정성 확보 전략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동기 조상기나 E-STATCOM 같은 보조 설비로 계통을 ‘강건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해법은 ‘보조설비’…E-STATCOM과 WAMAC

보고서는 동기 조상기를 “관성 제공과 무효전력 보상, 고장전류 공급, 공진 흡수에 도움을 주는 성숙한 기술”로 평가하면서도, 상시 회전으로 인한 손실이 커 “정격 무효전력의 약 15% 수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제성 한계도 지적했다.

반면 E-STATCOM은 GFM 인버터 기술과 슈퍼커패시터 등을 결합해 안정도 기능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보고서는 동기조상기 대비 상시 손실이 “3% 미만”으로 낮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었다.

둘째는 PMU 기반 WAMAC(광역 계측·제어) 운영체계 등, IBR의 빠른 응동 속도에 맞춘 고속·광역 제어 기술 고도화다.

보고서는 “운영 시스템이 다수 설비 정보를 매우 빠른 주기로 취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시간 전력흐름과 제어 파라미터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버터 기반 미래 그리드의 청사진. 소프트웨어 정의 그리드(Software Defined Grids)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을 책임질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운영 시스템은 수많은 자원들과 설비의 정보를 매우 빠른 주기로 취득하고, 이를 토대로 실시간 전력흐름과 제어 파라미터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앞서 설명한 WAMAC 기술이 고도화되어 상용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 출처: 보고서에서 캡처
사단법인 넥스트그룹

“미래 전력망은 ‘소프트웨어 정의’로 간다”

결국 최종 방향은 ‘소프트웨어 정의 그리드(Software Defined Grids)’로 모아진다. 송전선로 물리 구조와 임피던스 변화에 의존하던 전력 흐름은 HVDC·STATCOM 등 인버터 설비가 확대되면서 '지령 값(소프트웨어 설정) 변화로도 전력 전송량을 바꾸는 시대'로 이동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를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갈 때처럼, 운영체계와 컴퓨팅이 산업 전체 혁신을 이끌었던 변화'로 비유한다. 즉, 전력계통 또한 하드웨어 중심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가 안정성과 제어를 규정하는 구조로 재편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전력망 전환의 관건은 설비 확충보다 ‘제어 능력’의 전환에 달려있다. 정부와 전력당국은 인버터·PMU·광역제어를 하나의 소프트웨어 기반 운영체계로 통합하고, 계통 안정성을 코드와 알고리즘 수준에서 관리하는 디지털 전력망 전략을 서둘러 구축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제도와 인력의 전환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계통 코드를 ‘소프트웨어·데이터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고, 전력-제어-보안-데이터를 아우르는 전문인력과 검증 체계(디지털 트윈·HIL 테스트베드)를 갖춰 ‘업데이트 가능한 그리드’로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