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GHG 프로토콜 번역본 공개하는 푸른아시아

지구의 탄소 시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잠정)은 전년 대비 2.3% 증가한 577억 톤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파리협정이 체결되던 2015년보다도 약 60억 톤 늘었다. 10년 가까운 논의와 규제에도 불구하고 감축 속도는 정체돼 있다.

2%대 증가율도 기후변화 민감도가 지금보다 크게 낮았던 2000년대 수준임을 고려하면, 국제사회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국경을 넘는 탄소 규제가 현실화 하면서 기후 문제는 더 이상 환경 의제에 머물지 않는다. 수출, 투자, 조달, 기업 평가가 모두 탄소를 기준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내년 1월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한다. EU 역외에서 들어오는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비용을 부담하는 규제다. 미국, 영국, 중국 등도 '탄소 관세'를 예고하고 있다.

번역본 표지
푸른아시아

GHG 프로토콜 공식 번역본 나왔다

이 거대한 규제의 출발점에 놓인 하나의 이름이 바로 전 세계 기업·기관이 사용하는 온실가스 기준 GHG 프로토콜(Greenhouse Gas Protocol)이다.

최근 기후환경 NGO '(사)푸른아시아(이사장 손봉호, 이하 푸른아시아)'는 세계자원연구소(WRI)와 공식 계약을 맺고 8개 표준·지침의 한국어 번역본을 내놓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온실가스 표준으로 기업·기관 등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보고·검증(MRV)해서 보고할 수 있도록 방식을 정한 국제 표준이다.

그간 한국 기업·기관 등은 정부 지침, 기업 자체 방식 등이 섞여 기준이 모호했던 데다 영어 원문 해석 등이 혼선을 일으켜 국제 기준에 맞춘 온실가스 산정 수행에 애로가 있었다. 표준과 지침 총 8권 가운데 기본서인 <기업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 표준(Corporate Accounting and Reporting Standard)>(이하 '기업 표준')이 나옴에 따라 현장의 가닥은 잡힐 전망이다. 나머지 7권은 내년에 순차적으로 나온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는 "당장 내년부터 유럽연합 수출을 비롯해 투자회사 평가, 영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글로벌기업 공급망 납품 조건 등에 온실가스 이슈가 포함된다"면서 "국내 많은 기업들이 해외 정부, 투자자, 글로벌기업 등에 온실가스 측정·보고를 해야하는데 정확한 번역본이 없으면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CDP부터 항공·해운까지…활용 범위 넓다

이번에 발간된 '기업 표준'으로 해외 진출, 투자, 공시 등에 온실가스 데이터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첫걸음을 뗀 셈이다. 플래닛리터러시는 오기출 상임이사로부터 한국 기업에게 GHG 프로토콜이 왜 ‘생존 매뉴얼’이 되는지 알아봤다.

Q. 현재 GHG 프로토콜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GHG 프로토콜은 RE100을 포함해 여러 국제 온실가스 ESG 보고 기준을 주도하는 표준이다. 2023년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기업 시가 총액 80%를 차지하는 S&P500 기업의 97%가 이 프로토콜을 사용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에 보고했다.

또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 설정에 쓰이는 ‘과학기반 탄소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보고 기준이 GHG 프로토콜이다.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보고, 글로벌 투자사들의 기후 영향 평가, 시카코 기후거래소(CCX), 지속가능성 보고서 작성시 항목과 지침을 제시한 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GRI) 등에도 활용된다.

이밖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시행하는 국제항공 탄소상쇄 및 감축 제도인 코르시아(CORSIA)나 국제해사기구(IMO)가 도입 예정인 탄소부담금 등에서 항공사나 해운사가 온실가스를 측정할 때 GHG 프로토콜을 활용할 것이다.

글로벌 표준으로 비교 가능성과 정확성을 확보

Q. 번역본 활용하는 방법은?

2024년 이후 한국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들도 GHG 프로토콜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번역본은 GHG 프로토콜을 온실가스 측정·관리·보고를 위해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뒀기에 원문을 정확하게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기업과 산업계가 글로벌 표준이 아닌 한국형 기준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비교 가능성, 정확성 등의 이슈를 해결하고, 오류를 정정하는데 활용할 것이다.

더 나아가 GHG 프로토콜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MRV 표준인 만큼 기업 탈탄소 전략 수립과 국가 차원 탄소중립 정책 설계에서 핵심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다. 신뢰성 있는 배출량 산정 기준을 제공해 투자자, 고객 등 이해관계자에게 신뢰성 있는 데이터 기반 보고를 가능하게 만든다.

탈탄소 전환 로드맵 수립에 필수 요소이기도 한 만큼 공급망 관리, 비용 절감, 친환경 제품 개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ESG 공시 대부분에 활용돼 금융 접근성이나 투자 매력도 증가에 기여할 수 있다.

수출기업에 필요한 것은 ‘탄소전략 + MRV 능력’

Q. 기업들은 어떤 준비와 대응이 필요한가?

기후와 무역이 만나 기존 WTO 자유무역질서 대신 탄소 중심의 탄소 무역 블록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무역 블록에 탄소국경세가 적용되는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다. 이런 탄소 관세의 도전에 대응해야 하는데 두 가지 전략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저탄소사회와 저탄소산업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일본제철 사례를 참고하면 좋겠다. 이 회사는 미국 철강 관세에 대응해 미국의 유에스스틸을 인수하는 한편 일본 내 공장은 전기로 방식 채택 등 저탄소 철강 생산 전략을 세워 투자하고 있다. 이 전략은 EU, 영국 등에서 진행될 탄소국경세에 대비한 것이다.

둘째, 제품 생산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산정·관리·보고·검증을 국제 표준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한국 내에서만 사용하는 온실가스 기준을 적용하면 유럽 등 다른 지역 수입업체들이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은 조속히 국제 온실가스 표준을 현장에서 수행할 역량을 가진 전문가, 실무진들을 양성해야 한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푸른아시아 제공.

단일 표준이 현실화되면 무슨 일이 달라질까

Q. 최근 GHG 프로토콜과 국제표준화기구(ISO)가 함께 단일 표준을 만들기로 합의했는데?

지난 9월 GHG 프로토콜과 ISO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에 기업, 제품, 공급망, 프로젝트 전체를 대상으로 글로벌 온실가스 표준 개발을 시작했다. 이는 온실가스 표준에 대한 측정, 보고, 검증, 인증, 규제 등을 단일화하겠다는 의미다.

ISO의 온실가스 기준인 1406x 시리즈는 각국 정부와 규제기관, 인증의 법제화 근거로 활용되고 있으며, GHG 프로토콜은 기업이 가장 많이 채택해온 온실가스 회계표준이다.

이 두 기관의 표준 공동 개발은 온실가스 측정, 보고, 검증 절차를 단순화해 비교 가능성을 높이고 기업의 이중 보고 부담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또 무역 상대와 투자자에게 온실가스 데이터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단일 표준 논의 전개가 어떻게 전개될지 섣불리 단정하긴 어렵지만, 향후 3년 내 지구촌 온실가스 표준은 사실상 하나로 정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NGO가 글로벌 표준 파트너가 된 의미

Q. GHG 프로토콜 나머지 7종 발행 계획 등 앞으로의 일정은 어떤가?

내년 6월까지 나머지 표준 및 지침 7종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GHG 프로토콜 공식사이트에 등재할 계획이다. 현재 번역과 감수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다. 현장 실무진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설서 개발도 계획하고 있다.

또 수출기업 실무진들이 GHG 프로토콜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탄소국경조정제도, RE100,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등 ESG 국제 표준 교육을 위한 콘텐츠 개발과 플랫폼 구축도 지원할 예정이다.

WRI와 협력해서 한국이 국제 표준을 선도하게끔 배터리 표준, 반도체 표준, 철강 표준 등을 개발하고, 무역과 투자 기준을 세워갈 경우, 이를 지원할 계획도 있다.

편집자 주: 2021년 푸른아시아는 GHG 프로토콜이 새로 제정하는 ‘토양부문과 온실가스 제거 지침’(Land Sector and Removal Guidance)에 네슬레, 맥도날드와 함께 파일럿 테스트 및 감수 기관으로 참여해 활동하고 협력했다. 2023년에는 GHG 프로토콜 기업 표준 개정을 위해 전 세계에서 의견을 받았는데, 총 230건 제안 중 채택된 40건에서 푸른아시아가 제안한 2건이 포함됐다.

이것이 계기가 돼 이듬해 WRI와 푸른아시아는 아시아 최초로 GHG 프로토콜 표준·지침을 공식적으로 번역하는 계약을 맺었다. GHG 프로토콜이 새로운 표준·지침 제‧개정할 때 공식 파일럿 테스트와 감수 등의 협력을 하고 있다.

GHG 프로토콜은 표준, 기업 표준, 스코프(Scope) 2, 스코프 3 표준, 도시를 위한 온실가스 프로토콜, 프로젝트 프로토콜, 완화 목표 기준, 제품 수명 주기 표준, 정책 및 조치 기준, 안내, 계산 도구, 온라인 교육, 리뷰 서비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공식 '기업 표준'에 해당하는 한국어 번역본은 푸른아시아 홈페이지와 WRI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