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단 한 번도 폐의류를 재활용한 적이 없다”

“한국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폐의류를 ‘재활용’한 적이 없다.” 의류 수거함에 버려지는 헌옷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폐기물’로 흘러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이 지난 4월 공개한 <폐의류의 국내 재활용 체계 구축 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중고의류 수출량 세계 5위지만 이 중 상당량이 해외에서 소각·매립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폐의류 수출은 곧 재활용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는 환경적 재활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중고 수출에 의존해 온 기존의 민간 수거체계가 무너질 경우, 국내 생활폐기물 시스템 전체가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2023년도 전국 폐의류·폐섬유류 재활용률은 38%이며, 사업장비배출시설계의 재활용률이 18%로 가장 낮다. 통계상 발생원별 폐의류·폐섬유류 재활용률(반입량 기준). 자료: 환경부·한국환경공단(2020, 2021, 2022, 2023, 2024)을 토대로 저자 작성. 이미지 출처: 보고서에서 캡처

“한국발 폐의류, 현지서 산처럼 쌓인다”...수출 규제된다

보고서는 국내 폐의류·폐섬유류 총 발생량을 연간 80만 톤으로 산정했다. 이 가운데 41%는 재사용을 전제로 민간 수거함으로 모이지만, 실제로 재사용되는 비율은 미미한 실정이다.

2023년 기준 한국산 중고의류는 주로 말레이시아·인도·파키스탄 등 중개무역국으로 흘러가 다시 제3국으로 재수출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재사용’이 아니라 ‘잔재물 폐기 선별→현지 소각·매립’ 구조로 굳어져 있다.

그린피스가 추정한 해외 잔재물 비율은 최소 30%이다. 공식 통계에서는 분리배출·재활용된 것으로 잡히지만 그 중 적어도 30%는 해외에 ‘버려지고 있다’ 즉,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매립·방치·불법 투기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수출된 의류 중 재고가치가 없는 폐섬유는 수입국의 부적정 처리로 이어져 환경·보건 피해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EU가 2026년부터 중고의류를 ‘폐기물’로 분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한국 수출길이 사실상 줄어들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수거량·처리량 파악 안되고, 지자체 “아무것도 모른다"

또 하나의 충격은 국내 관리체계의 부재다. 전국 지자체를 조사한 결과, 80% 이상이 폐의류 수거를 민간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으며, 수거량·처리량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단독주택 지역 폐의류는 어떤 공적 관리체계도 없다. 공동주택 재활용 신고체계는 존재하지만, 단독주택에서 배출되는 폐의류는 “누가 얼마나, 어떻게 버렸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보고서는 이를 “국가 자원순환 정책의 가장 큰 블라인드 스폿”이라고 규정했다.

연간 80만 톤의 폐의류 중 재사용 수출(25.7%)의 비중이 가장 높고, 에너지 회수(5.9%), 물질 재활용(4.7%), 국내 재사용(2.0%) 순이다. 실질 국내 재활용률은 12.6%에 불과하다. 이를 제외하면 절반(51%)이 일반생활폐기물과 함께 버려진다.

특히 합성섬유 기반 의류는 세탁 단계 미세플라스틱 유출, 소각 시 온실가스 배출, 파쇄 과정 유해물질 노출 등 환경영향이 명확한데도 별도의 규제·비용 부담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Pre-EPR) 초기(도입) 단계 이해관계자 주체별 흐름도. 의류 Pre-EPR 내에서 회수 및 재활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민간 부문의 주요 이해관계자가 배제된 실제 초기 단계의 Pre-EPR 흐름도이다. 이미지 출처: 보고서에서 캡처.

소각장 대란 온다…EU 규제·수출 둔화 연쇄 충격

EU를 비롯 세계 각국이 중고의류 수출 통제를 현실화할 경우 한국의 수출 기반이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 “수출 수익성이 낮아지면 민간 수거업체가 폐의류 회수를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경우 공동주택의 기존 지정 수거업체는 이탈할 것이고, 기존 관리 시스템이 없었던 단독주택, 처리시설과 예산이 없는 지자체 등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는 생활폐기물 수거체계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소각장 용량이 이미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폐의류가 생활폐기물로 쏟아져 들어오면 “지역별 소각장 갈등이 폭발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보고서는 폐기물부담금 제도, 생산자책임재활용(EPR) 도입을 정책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플라스틱·아이스트팩·유독물 등에는 부담금이 부과되지만 의류는 법령상 ‘부담금 제외 품목’이다. 합성섬유·염료·코팅제 등 환경영향을 고려할 때 의복을 부담금 대상 제품으로 신설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의류에도 폐기물부담금 부과해야…Pre-EPR 도입도

또 의류는 품목별 회수·선별 체계가 아직 없어 완전한 EPR 적용은 어렵기 때문에 “Pre-EPR(준EPR)”을 먼저 도입하고, 점진적으로 확대하자는 방안을 내놨다. 가장 먼저 대상이 될 품목은 폴리에스터 70% 이상 의류다. 이 분야는 재활용 기술과 시장 수요가 이미 확보돼 있어 “수거체계만 갖추면 즉시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초기 Pre-EPR은 생산자(브랜드·수입사)가 의무량을 부담, 정부는 회수·선별 인프라 구축, 공공기관 근무복 등 단일 소재 의류를 우선 회수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안정화 단계에서는 민간 수출업자, 민간 수거업자까지 제도권으로 편입해 수출 실적까지 공식 재활용 통계에 포함시키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5년은 한국 패션·유통업계의 순환경제 전환을 결정짓는 골든타임이다. 패스트패션과 저가 의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수출 기반까지 흔들리는 지금이야말로 국내 회수·재활용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