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2028년 의무화…30조 이상 상장사부터 적용
한국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가 2028년부터 의무화된다. 우선 연결자산 30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부터 적용하고 이후 대상 기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2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 로드맵 초안’을 발표하고 3월 31일까지 공개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금융위는 이후 ‘ESG 금융 추진단’ 논의를 거쳐 4월 중 최종 로드맵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번 로드맵은 2021년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 방안」 발표 이후 5년간 논의돼 온 ESG 공시 제도를 구체화한 것으로, 그동안 불확실했던 공시 의무화 일정이 처음으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27년 사업연도부터 공시…58개 대기업 우선 적용
로드맵 초안에 따르면 지속가능성 공시는 2027년 사업연도(FY2027) 정보부터 적용된다. 기업들은 해당 정보를 2028년 사업보고서와 함께 공시해야 한다.
첫 적용 대상은 연결자산 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다. 금융당국은 이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이 약 58개사로 전체 상장사의 약 6.9%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공시 의무 대상은 단계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예시안에서는 2029년부터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이 제시됐다.
금융위는 기업 부담을 고려해 초기에는 거래소 공시 방식으로 운영하고, 제도가 안정화되면 자본시장법상 법정 공시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스코프 3 공시 3년 유예, 2031년부터 의무화 한다
기업 부담이 큰 온실가스 배출 공시도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직접 배출과 전력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인 스코프1·2(Scope 1·2)는 초기 공시 대상에 포함되지만 공급망 전체 배출량을 의미하는 스코프 3 공시는 3년 유예기간을 거쳐 2031년부터 의무화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 공시 첫 해에는 일정 기준을 충족한 소규모 종속기업의 공시 의무를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연결 기준 자산 또는 매출 비중이 10% 미만인 종속기업은 공시 범위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이번 공시 일정은 글로벌 규제 환경을 고려해 설계됐다. 특히 유럽연합(EU)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를 의무화하는 CSRD(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를 도입해 역외 기업에도 공시 의무를 부과할 예정이다. 해당 제도는 2029년부터 EU 매출 기준을 충족하는 해외 기업에도 적용된다.
금융당국은 국내 기업들이 EU 규제 시행 전에 공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국내 공시 일정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시 준비, 거버넌스·데이터 관리 체계 구축이 관건
공시 기준도 글로벌 표준을 기반으로 마련됐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2월 26일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첫 번째 세트를 확정했다. 이 기준은 글로벌 공시 표준을 제정하는 ISSB(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가 발표한 기준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국제적으로는 IFRS(Sustainability Disclosure Standards)가 사실상 ESG 공시의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 공시 기준 역시 이를 반영해 ▲거버넌스 ▲전략 ▲위험관리 ▲지표·목표 등 네 가지 구조로 구성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 도입이 단순한 ESG 보고 확대가 아니라 기업 경영 시스템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는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ESG 공시가 투자 판단에 활용되는 재무 정보 성격을 갖는 만큼 데이터 신뢰성과 내부 통제 체계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삼일PWC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과제로 ▲공시 거버넌스 구축 ▲공시 범위 설정 ▲온실가스 데이터 관리 체계 구축 ▲기후 리스크의 재무 영향 분석 ▲내부통제 기반 데이터 검증 등을 제시했다.
철강·자동차·반도체…ESG 공시 영향 ‘직격탄’ 업종
금융위원회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로드맵이 현실화되면 국내 주요 제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일수록 공시 부담과 규제 대응 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철강·자동차·반도체·화학·전력 산업을 ESG 공시의 핵심 영향 업종으로 꼽는다. 이들 산업은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많거나 글로벌 공급망 규제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분야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산업은 철강과 시멘트 등 고탄소 산업이다.
자동차와 전자 산업도 ESG 공시 확대의 핵심 영향 업종이다. 이들 산업은 생산 과정뿐 아니라 협력업체에서 발생하는 배출량까지 관리해야 하는 공급망 탄소 관리가 핵심 과제가 된다. 전문가들은 ESG 공시 의무화 이후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데이터 관리 능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금융위는 의견 수렴을 통해 공시 대상 기업 규모와 적용 시점, 종속회사 공시 범위 등을 조정한 뒤 올해 4월 최종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