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곳당 ESG KPI 평균 100개...체크리스트 아닌 핵심 역량 되어야

세계 89개 대기업을 분석한 결과 대기업 한 곳이 관리하는 ESG 관련 KPI는 무려 평균 100개에 달했다. 2018년 대비 30% 늘어난 수치로 인력과 돈을 쓰는 일이 대폭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ESG 평가기관 간 점수 일관성도 떨어지면서 회의론이 점증하는 추세다. 기업들은 ESG 투자가 장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단기 재무성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민은 커지고 있다.

특히 ESG는 본래 기업의 핵심 사업모델과 혁신 역량을 사회문제 해결과 연결하려는 개념이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여전히 ESG를 홍보·윤리·CSR의 확장판으로만 다루고 있다.  

기업이 사회적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더라도 네 가지 촉진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보고서에서 캡처
MGI

‘ESG 체크리스트’의 시대는 끝났다

맥킨지 글로벌연구소(MGI)의 최신 보고서 'ESG 너머: 체크리스트에서 핵심 역량으로(Beyond ESG: From Checklists to Capabilities)'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ESG가 폭발적으로 확산됐지만, 결과적으로 ‘과잉 측정의 덫’에 빠졌다.

수치의 성장이 실질적 변화를 담보하지도 않았다. 기업들은 지표 관리와 보고 의무에 매몰된 나머지, 자사의 역량이 사회적 가치 창출에 어디에 기여할 수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맥킨지는 이를 ESG 피로감(ESG fatigue)으로 규정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ESG 주주 제안이 감소했고, 유럽연합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이 시행되면서 규제는 늘었지만 전략적 효용은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맥킨지는 '말에게 맞는 경기장(Horses for Courses)'라는 새로운 ESG 전략 프레임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한 기업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 이슈는 18개 중 1~3개에 불과하다”고 분석한다. 모든 기업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펼쳐놓는 것보다 집중과 선택이 관건

기업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 즉 ‘핵심 역량(capability)’과 ‘사회적 수요(societal need)’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 집중해야 한다.

예컨대 의료서비스 산업은 글로벌 대기업 매출의 4%에 불과하지만, 모성·신생아 건강 개선의 35%를 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다. 반면 대부분의 산업은 1~3개의 사회문제에만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SG는 ‘포괄적 의무 목록’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 전략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연결하는 구조적 전환의 프레임'이라는 관점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맥킨지는 규제 대응 중심에서 혁신 역량 중심으로(Compliance → Capabilities), 광범위한 공시에서 선택과 집중으로(Breadth → Focus), 독립적 CSR이 아닌 사업 전략과의 통합(Isolation → Integration) 등으로 ESG의 미래 방향을 제시한다.

‘전략으로서의 ESG’ 시대를 열 때다

ESG의 성공은 더 이상 보고서에 무엇을 담느냐가 아니라 기업이 제품·서비스·기술·투자 포트폴리오를 사회적 지속가능성과 어떻게 연결시키는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ESG의 실질적 성과에 대한 회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ESG 조직이 분리되어 운영되고, 인증·등급 관리가 중심이 되면서 ‘지속가능성’이 본업과 유리되는 구조도 형성됐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ESG 보고서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가 어떤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느냐’를 묻는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즉, “ESG를 사업 전략의 언어로 재번역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맥킨지 보고서는 “실질적 진전은 기업의 혁신 역량이 사회적 필요와 맞닿을 때, 그리고 시장이 이를 뒷받침할 때 비로소 일어난다"면서 ESG를 ‘미래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 축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