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포장재 규제 전면 시행…식품 포장 ‘영원한 화학물질’ 제한

유럽연합(EU)이 식품 접촉 포장재에 함유된 과불화알킬 및 폴리플루오로알킬 물질(PFAS)을 제한하는 등 포장재 전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새로운 규제를 시행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2일부터 ‘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정(PPWR)’을 EU 전역에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PPWR은 2024년 12월 EU 입법기관이 채택하고 2025년 2월 발효한 규정으로, 기존의 포장 및 포장 폐기물 지침을 대체한다.

새 규정의 핵심은 포장 폐기물을 줄이고 재사용과 재활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회원국별로 달랐던 포장 관련 규정을 단일한 EU 기준으로 통합해 기업의 규정 준수 비용을 낮추고, 국경을 넘는 상품 거래와 순환형 포장재 투자를 촉진하려는 목적도 담고 있다.

이미지 출처: EU홈페이지에서 캡처.

식품 포장재 PFAS 사용 엄격히 제한

가장 먼저 적용되는 조치는 식품 접촉 포장재에 함유된 PFAS 규제다. 앞으로 EU 시장에서는 기준치 이상의 PFAS가 들어 있는 식품 접촉 포장재를 판매하거나 유통할 수 없다.

PFAS는 물과 기름에 잘 젖지 않는 특성 때문에 테이크아웃 용기와 패스트푸드 포장지, 피자 상자, 전자레인지용 팝콘 봉지, 제빵용 종이 등에 사용돼 왔다.

그러나 자연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고 인체와 환경에 장기간 축적된다는 점에서 이른바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린다. EU는 이번 조치가 소비자의 PFAS 노출을 줄이는 동시에 생산·폐기 과정에서 유해 물질이 환경으로 배출되는 것을 억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새 규정은 포장재의 추적성과 제품 정보 관리도 강화했다. EU 시장에 포장재를 공급하는 제조업체와 수입업체는 제품에 자신을 식별하고 연락할 수 있는 정보를 표시해야 한다. 규제 당국이 포장재의 생산·유통 경로와 책임 주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28년부터 EU 공통 분리배출 표시

포장재 표시제도도 단계적으로 통일된다. EU는 2028년부터 포장재의 재질과 분리배출 방법을 알려주는 공통 라벨링 체계를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 회원국마다 다른 분리배출 표시를 단일 기준으로 통합해 소비자의 혼란을 줄이고, 재활용과 퇴비화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EU 집행위원회는 공통 표시제도가 시행되면 포장업계가 장기적으로 수십억 유로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포장 자체의 부피를 줄이기 위한 규제는 2030년부터 본격화된다. 불필요한 빈 공간을 제한하고 일부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의 사용을 금지하는 한편, 포장재별 재사용 목표도 적용한다. 사용 제한 대상에는 일정 조건 아래 신선 과일·채소용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 호텔과 식당·카페 등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식음료 포장, 호텔 객실에 제공되는 소형 화장품과 세면용품 용기 등이 포함된다.

EU는 2018년을 기준으로 1인당 포장 폐기물 발생량을 2030년까지 5%, 2035년까지 10%, 2040년까지 15%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2030년 모든 포장재 ‘재활용 가능 설계’

순환경제 전환을 위한 포장재 설계 기준도 강화된다. 2030년부터 EU 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포장재는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돼야 한다. 새로 생산되는 플라스틱 포장재에는 일정 비율 이상의 재활용 원료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2035년부터는 설계 단계의 재활용 가능성을 넘어 실제로 포장 폐기물을 분리 수거하고 재질별로 분류해 대규모로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명목상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가 아니라 실제 폐기물 처리체계에서 회수·재활용되는 포장재만 시장에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EU가 규제 강화에 나선 것은 기존 제도만으로는 포장 폐기물 증가를 막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EU에서는 매년 1인당 약 186㎏의 포장 폐기물이 발생하며, 이 가운데 플라스틱 포장 폐기물이 약 36㎏을 차지한다. 포장 부문은 EU 전체 플라스틱 사용량의 약 40%, 종이 사용량의 약 50%를 소비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추가 조치가 없을 경우 2030년까지 전체 포장 폐기물은 19%, 플라스틱 포장 폐기물은 최대 46%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식품·화장품 수출기업 대응 시급

제시카 로스월 EU 환경·수자원 회복력 및 경쟁력 있는 순환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새로운 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정은 유럽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동시에 PFAS와 같은 유해 물질을 제한해 식품 접촉 포장재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규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진정한 순환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며 “시장 참여자들과 협력해 새로운 규정을 실용적이고 불필요한 관료주의를 유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라면·김·과자·냉동식품·즉석식품·배달음식 용기 등 방수·방유 기능을 갖춘 포장재를 사용하는 한국 식품기업이나 화장품 업계의 경우 PFAS 함유 여부에 적극 대응이 요구된다. 특히 종이나 친환경 소재로 보이는 포장재라도 기름이나 수분을 차단하기 위한 코팅제에 PFAS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식품 제조기업이 국내 포장재 업체에서 완제품 포장지를 구매하는 경우 “PFAS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공급업체의 확인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EU 수입업체와 유통업체가 시험성적서, 원료명세서, 공급업체 적합성 확인서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