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 확산 더딘 이유는 ‘계약 구조’…20년 고정 계약이 발목

국내 PPA 계약은 제도 도입 이후 빠르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RE100 이행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2025년 기준 PPA 누적 계약 물량은 약 1.2GW 수준으로, 이를 전력량으로 환산해도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예상 수요의 2%도 되지 않는다. 특히 2025년 신규 PPA 계약 물량은 급감하며 확산세가 둔화되는 모습이다.

이렇게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이 좀처럼 확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20년에 달하는 경직된 장기 계약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자원·환경경제연구 최신호에 실린 '실물옵션을 이용한 PPA 최적 투자 시점 분석 Ⅱ-이중불확실성하에서의 탄력적 PPA 계약 방식을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전력 가격이 장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PPA 투자를 주저하는 핵심 원인은 계약기간의 경직성이라고 지적했다.

기간별 국내 PPA 계약 물량 추이. 데이터 출처: SEMI(2025), 이미지 출처: 논문에서 캡처

“장기 고정계약에서 탄력 계약으로 전환 필요”

현행 PPA 계약기간이 과거 RPS(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 제도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해 20년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논문은 “단기간 내 경영 성과를 요구받는 기업 의사결정 구조에서, 20년 장기 계약은 전력요금 절감 효과가 명확하더라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제도적 관성’을 깨지 않는 한, RE100과 ESG 요구가 아무리 커져도 국내 PPA 시장의 본격적인 성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탄력적 PPA 계약 방식’이 요구된다. 논문은 "우선 계약기간을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이는 대신, 전기사용자가 재생에너지 공급사업자에게 일정 수준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논문은 이어 "계약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누고, 전기(前期)에 옵션 프리미엄을 지급한 뒤 10년 후 연장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옵션형 계약 구조’"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PPA, 비용 절감 수단 넘어 ‘전략적 계약’으로

실물옵션(real option)을 분석한 결과, 두 방식 모두 기존의 20년 고정 PPA 계약보다는 투자 진입 문턱이 다소 높아지지만,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력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보다는 경제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의 저자인 이재형 SK텔레콤 ESG추진실 매니저는 "특히 전력 가격이 구조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계약기간을 유연화하고 일정 프리미엄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PPA 활성화를 위해서는 송·배전망, 인허가, 제도 개선 같은 중장기 과제도 중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계약 구조 자체를 기업 현실에 맞게 유연화하는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금융·회계 기준과 세제, 공공조달 연계 방안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기업 역시 ‘최저가 전력 조달’ 관점에서 벗어나, 리스크 관리와 전략적 선택으로서의 PPA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PPA는 전력시장과 기업 투자 의사결정을 잇는 제도적 인프라이기 때문이다.